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문화 — 라구사 공화국에서 킹스랜딩까지
라구사 공화국에서 킹스랜딩까지
1,400년 역사의 해양 공화국, 전쟁의 상흔, 그리고 부활한 아드리아해의 진주
라구사 — 7세기의 시작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바르족의 침략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슬라브인들이 바위섬 '라우시온(Lausion)'에 정착하면서 도시가 시작되었다. 이 이름이 변형되어 '라구사(Ragusa)'가 되었고, 이것이 이 도시의 공식 이름이었다. '두브로브니크'는 슬라브어로 '참나무 숲'을 뜻하며, 크로아티아어 이름으로 병용되다가 근대에 공식 명칭이 되었다.
라구사 공화국 — 해양 무역의 황금시대
14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450년간 두브로브니크는 독립 해양 공화국 '라구사 공화국(Respublica Ragusina)'으로 존속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교묘한 외교술로 독립을 유지하며, 지중해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자유는 세계의 모든 금으로도 팔 수 없다(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 — 로브리예나츠 요새 입구에 새겨진 이 문구는 라구사 공화국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 작은 도시 국가는 노예제를 1416년에 폐지했는데, 이는 유럽에서 가장 이른 시기 중 하나다.
성벽과 요새 — 자유를 지킨 돌
오늘날 보이는 성벽 대부분은 12~17세기에 걸쳐 건설되었다. 총 길이 약 2km, 최대 높이 25m, 최대 두께 6m. 성벽을 따라 민체타 타워(가장 높음), 보카르 요새, 성 요한 요새, 레벨린 요새가 배치되어 있다. 독립적인 로브리예나츠 요새는 서쪽 입구를 지키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이 성벽은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었다. 라구사 공화국이 오스만 제국에 매년 공물을 바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은 독립의 상징이었다. 1667년 대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을 때도 성벽은 살아남았다.
1991년 — 포격과 상흔
1991년 10월부터 1992년 5월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구시가지에 2,000발 이상의 포탄이 떨어졌고, 건물의 68%가 손상되었다. 스르드 산 위에는 당시 전투의 흔적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전쟁이 끝난 후 국제 사회의 지원과 크로아티아 정부의 노력으로 구시가지는 10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밝은 주황색 새 지붕과 어두운 갈색 옛 지붕이 모자이크처럼 섞여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전쟁과 복원의 지도다. 새 지붕 하나하나가 한때 포탄이 떨어진 자리다.
왕좌의 게임 — 킹스랜딩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두브로브니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구시가지는 수도 킹스랜딩(King's Landing)으로, 로브리예나츠 요새는 레드 킵(Red Keep)으로, 민체타 타워는 워록의 집(House of the Undying)으로 촬영되었다. 구시가지 곳곳에서 '왕좌의 게임 워킹 투어'가 운영되며, 촬영 장소를 따라가는 팬들의 행렬은 이제 두브로브니크의 일상이 되었다.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
매년 7~8월에 열리는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Dubrovačke Ljetne Igre)는 1950년부터 이어져 온 문화 행사다. 로브리예나츠 요새에서 셰익스피어 '햄릿'이, 렉터 궁전 앞에서 실내악 콘서트가, 구시가지 곳곳에서 연극과 오페라가 펼쳐진다. 성벽과 석조 건물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공연은 다른 어떤 극장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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