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는 산이 험하기로 유명하다. 섬 안에는 일곱개나 되는 큰 산이 있고 그 중 세개는 2천미터 이상이다. 그런 이유로 해안가에 조금있는 평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산악지형이다. 라토 또는 래토는 아요스 니콜라오스에서 서쪽으로 약 11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길은 거의 계속 오르막이고 약 5킬로를 달린 후에는 본격적인 꼬불꼬불 산길이다. 마을은 산꼭대기까지 집들이 빼곡해 통영의 동피랑같다.
아폴로와 아르테미스 쌍동이 남매의 어머니는 레토 Leto이다. 제우스에게 속아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불같은 질투까지 받아 그리스 전역을 떠돌던 불쌍한 레토. Lato는 레토Leto의 도리아 식 표기이다. 미케네 문명이 지배하던 섬을 정복한 도리아 인들은 크레타의 중부와 동부를 잇는 길목을 지킬 목적으로 이 마을을 건설하였다.
도시에서 내려다 보면 맞은편 산에 라토 마을이 있는 산 그림자가 지고 한줄기 도로가 산 중턱을지나간다. 주변은 온통 산 뿐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수들 중 니아커스 Nearchos가 이곳 출신이다.
유적
돌무더기.
무심코 지나는 여행객이라면 그저 특이한 돌산 정도로 착각할 정도로 돌 천지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자연적으로는 배치될 수 없는 형태로, 비슷한 크기의 수많은 돌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의 집터였을까? 비탈진 언덕에 축대를 쌓고 평지를 만든 후 집을 지었을 것 같은 대지가 곳곳에 눈에 띈다.
발굴 당시에 그려진 도시의 평면도를 보면 산 정상을 중심으로 서쪽 경사면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의 중심부는 공방은 물론 행정 시설과 신전, 극장, 그리고 주랑 stoa까지 있었다.
도시 중심부의 현재 모습은 도저히 과거의 영화를 짐작할 수 없을만큼 무너져 내려 버려졌다.
유적 입구에 세워 놓은 표지판에는 x자로 이 도시의 영역을 표시해 놓았다. 산 정상에서 보이는 바다가 이들이 중요하게 지키던 영토이다. 모든 도로는 이 마을을 지나가는 것이 뚜렷하다.
마을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바다가 먼 산너머에 펼쳐지고 작은 평야가 그 앞에 보인다.
근방을 호령하던 강력한 군주가 머물던 이 마을도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기원전 2세기에 버려진다. 더 이상 전쟁이 필요없어진 마당에 산속에서 길목만 지키고, 통행세를 받는 것보다 항구도시에서 직접 교역에 참여하는 것이 더 유익했을 것이다.
그리스 고전기와 헬리니즘기를 통해 가장 잘 보존된 도시 유적인 라토의 폐허는 오늘도 산 아래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길에는 인적마저 뜸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심복인 니아커스가 이곳 출신이라니 그의 용맹함이 이런 거친 산 속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에 길러진 것인가?
산 너머에서 해가 솟아 오르고 있어 산너머 먼 바다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맞은 편 산은 아침 태양을 받아 노랗게 물들어 있다.
옛 도시가 있던 곳에는 뿌리가 뽑힌 나무 등걸이 허무하게 사그라져 가는 도시의 운명을 닮았다. 3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2300년 전에는 이곳의 한 소년이 마케도니아로 이사를 가 대장군으로 성장한 대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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