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티네이아 여행 — 스파르타·아테네·테바이가 격돌한 평야와 비잔틴 교회
만티네이아 여행 — 스파르타·아테네·테바이가 격돌한 평야와 비잔틴 교회
왕에게 50 억 벌금을 매긴 시민들의 후일담 , 에파미논다스의 죽음 , 그리고 가우디가 영감받았을 법한 교회 | 펠로폰네소스 숨은 명소
건조한 여름 , 먼지 바람이 회오리가 되어 평원을 쓸고 지나가는 풍경이 고적한 교회를 더욱 빛나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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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티네이아—그리스판도를바꾼두번의전투
만티네이아 (Mantinea).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부 , 아르카디아 지방에 있는 — 그리스에서 보기 드문 넓은 평야입니다 . 산이 대부분인 그리스에서 넓은 평야는 곧 — 전장을 의미합니다 . 대규모 군대가 맞붙을 수 있는 유일한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 이 평야에서 — 고대 그리스의 판도를 바꾼 대규모 전투가 두 번이나 치러졌습니다 .
이 전투의 배경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 스파르타의 어린 왕 아기스 (Agis) 는 BC 420 년경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 아테네와 교전을 피하고 동맹과 상의도 없이 휴전을 체결한 후 귀국했습니다 .
분노한 스파르타 시민들의 반응 : - 10,000 드라크마의 벌금 ( 현재 약 50 억 원 상당 ) - 왕의 집을 부숴버림 궁지에 몰린 왕은 다른 전투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집정관들에게 호소하여 조건부 허락을 받습니다 . 조건은 — 왕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때 반드시 상의해야 하는 고문을 데리고 출전하라는 것 .
1차만티네이아전투(BC 418) —스파르타왕의명예회복전
그리고 만티네이아 평야에서 — 아기스는 승리를 쟁취합니다 . 겨우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게 됩니다 . 왕에게 50 억 벌금을 매기고 집을 부순 시민들 . 그리고 묵묵히 전장에서 증명한 왕 . 이것이 — 스파르타였습니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 아테네가 암흑기에 있는 동안 테바이 (Thebes) 는 급신장했습니다 .
가장 큰 요인은 — 걸출한 장군 에파미논다스 (Epaminondas) 의 등장이었습니다 . 그는 BC 371 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 무적의 스파르타 " 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격파한 천재 전략가였습니다 . BC 362 년 , 만티네이아 평야에서 결전이 벌어졌습니다 . 놀랍게도 — 이번에는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같은 편이었습니다 . 둘 다 테바이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되는 것 — 이것이 그리스 정치입니다 . 전투는 테바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하지만 — 에파미논다스가 전사합니다 .
2차만티네이아전투(BC 362) —에파미논다스의죽음
승리의 순간에 지도자를 잃은 테바이는 — 이후 쇠락해 갑니다 . 승리가 패배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투였습니다 .
역사적 교훈 : 에파미논다스가 죽으며 남긴 말이 전해집니다 . 부하가 " 후계자를 누구로 하겠습니까 ?" 라고 묻자 — " 나의 승리들이 후계자다 "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 그러나 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하는 국가는 — 그 개인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집니다 . 현대 기업에서도 유효한 교훈입니다 .
만티네이아 평야에 두 전투를 기리는 승전탑이 먼 산을 배경으로 서 있었습니다 . 원형으로 기둥을 세운 기념비와 , 축소판 신전 모양의 사당이 있습니다 . 사당은 만티네이아 평야를 바라보고 있는데 — 정면의 경사로 중앙에는 묘비석 같은 돌판이 있습니다 .
전투추모비—평야를바라보는돌
사당의 뒤로 돌아가면 비석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그곳이 — 전투가 벌어진 곳일 것입니다 . 장식이 모두 벗겨지고 석재들의 이음새가 드러난 사당 .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 정교하게 돌을 다듬은 솜씨가 보입니다 . 원형 기둥을 만들기 위해 반원형 돌 두 개를 맞붙인 기술 . 자세히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
바로 옆에 서 있는 교회였습니다 . 두 개의 전투 추모 사당과 삼각형 꼭지점을 이루며 서 있는 이 교회는 —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 현재까지 교회로 사용되는 이곳의 주 출입구는 불과 1 미터 남짓한 나무 문 . 문을 열면 외부의 빛이 어둡게 잠겨 있던 내부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
숨겨진보석—비잔틴교회
모자이크 바닥
전체가 모자이크로 장식된 교회 바닥 . 주위를 둘러보다 고개를 들면 — 예수께서 준엄하게 내려보고 계십니다 .
이 교회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 창문입니다 . 창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맞는 돌판으로 덮습니다 . 다만 그 돌판에는 — 창으로 쓸 구멍들이 패턴으로 뚫려 있습니다 . 각각의 창문이 다른 패턴 .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입니다 .
돌로만든창문—가우디의영감?
창문만 찬찬히 봐도 한 시간이 걸립니다 . 벽돌 벽 하나를 쌓아도 강도와 편리성이 모두 고려된 복합적인 설계 . 각기 다른 높이의 기둥을 써서 오른편으로 조금씩 내려가는 부분 . 마치 가우디가 이곳을 보고 영감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
언제적 기둥인가 ? 짐작도 할 수 없다 . 그런데도 디자인은 매우 현대적이다 . 마티스나 피카소가 이 기둥을 보고 그대로 그리려 했다 해도 믿을 정도의 감각이다 .
1. 승리보다 위험한 것은 — 지도자의 죽음이다
만티네이아가우리에게주는3가지교훈
에파미논다스의 테바이는 전투에서 이겼지만 , 그의 죽음과 함께 쇠락했습니다 . 한 사람의 천재에 의존하는 조직은 —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 시스템이 천재를 대체할 수 있어야 합니다 .
2.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될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싸운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 2 차 만티네이아 전투에서는 같은 편이 되었습니다 .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습니다 . 이익이 동맹을 결정합니다 .
만티네이아실용가이드
3. 아름다움은 숨겨진 곳에 있다
세계적 관광지가 아닌 만티네이아의 작은 교회에서 , 가우디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을 만났습니다 .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면 — 진짜 보석을 놓칩니다 .
두전투비교—한눈에보기
Q: 만티네이아에 굳이 갈 가치가 있나요 ?
전투 추모비 자체는 소박합니다 . 하지만 비잔틴 교회가 예상 밖의 보석입니다 . 돌 창문 패턴은 — 그리스 여행 전체에서 가장 독특한 건축 경험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트리폴리에서 15 분이므로 경유하기 좋습니다 .
Q: 비잔틴 교회 이름이 무엇인가요 ?
자주묻는질문(FAQ)
아기이 포톨리 교회 (Agii Fotoli) 또는 판아기아 교회로 불립니다 . 정확한 건축 연대는 논쟁이 있으나 , 12-13 세기 비잔틴 시대로 추정됩니다 .
Q: 에파미논다스는 왜 중요한가요 ?
그는 " 무적의 스파르타 " 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격파한 장군입니다 (BC 371 레우크트라 전투 ). 사선진 전술 (Oblique order) 을 발명했으며 , 나폴레옹과 프리드리히 대왕이 연구한 전술의 원조입니다 .
만티네이아가가르쳐준것
Q: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같은 편이 된 적이 있나요 ?
네 ! 2 차 만티네이아 전투 (BC 362) 에서 공동의 적 테바이에 맞서 동맹했습니다 . 페르시아 전쟁 (BC 480) 이후 두 번째로 같은 편에 선 사건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팁
이 평야에서 두 번 , 그리스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 첫 번째는 스파르타가 패권을 재확인한 날 . 두 번째는 테바이가 승리했지만 — 그 승리와 함께 사라진 날 . 전투 추모비의 돌은 풍화되어 장식이 벗겨졌지만 , 석공의 정교한 솜씨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옆의 교회에서 — 2,000 년 전의 건축이 오늘의 예술보다 더 현대적일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 창문만 봐도 한 시간 . 기둥 하나에 마티스를 떠올리게 하는 감각 . 만티네이아는 — 전투의 땅이기도 하지만 , 아름다움이 숨겨진 땅이기도 합니다 .
만티네이아핵심정보
건조한 여름 , 먼지 바람이 회오리가 되어 평원을 쓸고 지나간다 . 고적한 교회가 더욱 빛난다 .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만티네이아를 떠난다 . 나그네의 일정 탓에 아름다운 교회와의 만남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 하지만 — 돌 창문의 패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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