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는 왜 이타카로 돌아가려 했나 — 호메로스의 섬
트로이 전쟁 10년, 귀향 10년. 총 20년을 떠돌며 오디세우스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 그 섬에 요트로 입항하면, 3천 년 전의 이야기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인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10년 동안 지중해를 떠돌며 온갖 시련을 겪는다. 키클롭스, 세이렌, 칼립소, 키르케 — 신화 속 괴물과 마녀를 만나면서도 그의 마음은 항상 이타카를 향해 있었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단순히 '집'이 아니었다. 아내 페넬로페, 아들 텔레마코스, 늙은 아버지 라에르테스가 기다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불멸의 여신 칼립소가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약속하며 함께 살자고 했을 때도, 오디세우스는 거절했다. 늙고 죽더라도 이타카로 돌아가겠다고.
20년 만에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하고 자신의 궁전에 들어간다.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을 활로 쏘아 물리치고, 마침내 페넬로페와 재회한다. 서양 문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감동적인 귀향 장면이다.
카바피스의 시 "이타카"
1911년,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Constantine Cavafy)는 이타카라는 시를 썼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빌려, 인생 여정의 의미를 노래한 이 시는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이타카 없이는 그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타카는 너에게 더 줄 것이 없다.
이타카가 너를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는 이미 현명해졌고, 경험으로 가득 찼으니.
이타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너는 안다."
세일러에게 이 시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항해하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은 바람을 맞으며 바다 위에 있는 그 시간이다. 이타카에 도착하는 것보다, 이타카를 향해 항해하는 과정이 더 아름답다.
오디세우스의 궁전?
오디세우스가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이타카에서 그의 흔적을 찾으려 계속 시도해왔다. 19세기에 트로이를 발굴한 슐리만(Schliemann)도 이타카에서 발굴을 시도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바티 북쪽 아기오스 아타나시오스(Agios Athanasios) 언덕이다. 여기서 미케네 시대(기원전 1300~1100년경)의 건물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궁전급 규모와 일치한다는 주장이 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호메로스가 묘사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궁전"이라는 위치와는 잘 맞아떨어진다.
이오니아 제도의 역사
이타카를 포함한 이오니아 제도는 그리스 본토와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베네치아 공화국(1204~1797)이 수백 년간 지배했고, 이후 프랑스, 영국을 거쳐 1864년에야 그리스에 합류했다.
베네치아의 영향은 곳곳에 남아 있다. 키오니와 바티의 돌집 건축양식, 항구 키의 구조, 심지어 요리에도 이탈리아의 흔적이 섞여 있다. 에게해의 하얀 큐브 건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오늘의 이타카
인구 약 3,000명. 공항이 없다. 대형 호텔도, 관광 버스도, 면세점도 없다. 이타카는 그리스에서 가장 '관광화되지 않은' 섬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이 이타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요트로 키오니에 입항하면, 타베르나 주인이 밧줄을 잡아주고, 옆 요트의 선장이 맥주를 건넨다. 바티의 워터프론트를 걸으면 어부가 인사를 하고, 고양이가 따라온다. 이것이 진짜 그리스다. 매스 투어리즘이 닿지 않은, 오디세우스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속도가 여기 있다.
이타카에 도착한 모든 세일러는 조금씩 오디세우스가 된다. 20년이 아니라 며칠간의 항해였을지라도, 이 작은 만에 닻을 내리는 순간 — "드디어 돌아왔다"는 감정이 밀려온다. 그것이 이타카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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