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케팔로니아 — 1953년 대지진과 코렐리 대위의 만돌린
Kefalonia — The 1953 Earthquake and Captain Corelli
모든 것이 무너진 섬,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을, 그리고 한 편의 소설이 바꾼 것
Levante Ferries at Sami harbor — a port rebuilt after 1953
1953년 대지진
1953년 8월 12일, 이오니아 해 해저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여진들. 케팔로니아 섬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졌습니다. 수도 아르고스톨리는 폐허가 되었고, 사미도, 리쿠리도, 스칼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진 후 발생한 화재가 남은 구조물마저 태웠습니다.
섬 인구의 상당수가 이주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아테네로, 호주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마을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케팔로니아의 대부분의 마을은 1950~60년대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 실용적이지만, 역사적 깊이가 사라진 모습입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섬 최북단의 피스카르도(Fiskardo). 이 작은 어촌 마을만이 지진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18세기 베네치아 시대의 석조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케팔로니아에서 "지진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요트 세일러들이 피스카르도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Green mountains of Sami bay — the earthquake destroyed buildings, not these mountains
코렐리 대위의 만돌린
1994년, 영국 작가 루이 드 베르니에르(Louis de Bernieres)가 소설 코렐리 대위의 만돌린(Captain Corelli's Mandolin)을 발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에 점령된 케팔로니아를 배경으로, 이탈리아 장교 코렐리와 그리스 여인 펠라기아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01년에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촬영지 대부분이 케팔로니아에 있습니다. 사미 인근의 안티사모스(Antisamos) 해변이 주요 촬영지였고, 이후 관광객이 급증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비극적입니다. 1943년 이탈리아 항복 후, 케팔로니아에 주둔하던 이탈리아 아퀴(Acqui) 사단은 독일군에 무장해제를 거부했습니다. 결과는 학살 — 수천 명의 이탈리아 병사가 처형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설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로볼라 와인
케팔로니아에는 이 섬에서만 자라는 포도 품종이 있습니다. 로볼라(Robola) — 아이노스 산의 중턱, 해발 300~800미터의 경사면에서 재배됩니다. 석회암 토양과 이오니아 해의 바람이 만들어내는 미네랄 풍부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
로볼라 와인 협동조합(Robola Cooperative)은 오메랄라(Omala) 계곡에 위치하며, 방문 시음이 가능합니다. 사미에서 렌터카로 30분 정도. 포도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올라가면, 산 아래로 이오니아 해가 내려다보입니다. 와인 한 잔과 함께 보는 이 풍경 — 케팔로니아의 숨겨진 보석입니다.
Sami harbor at dusk — evening with a glass of Robola
오디세우스의 진짜 고향?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고향은 이타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논쟁이 있습니다. 독일 고고학자 빌헬름 되르프펠트(Wilhelm Dorpfeld)는 호메로스가 묘사한 이타카의 지리적 특징이 실제 이타카 섬보다 케팔로니아에 더 부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타카를 "가장 높은 산이 있는 섬"이라고 묘사했는데, 실제 이타카의 최고봉은 806미터인 반면 케팔로니아의 아이노스 산은 1,628미터입니다. 또한 "서쪽의 세 섬 중 가장 먼 곳"이라는 묘사도 케팔로니아의 위치에 더 맞는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이 이론은 정설이 아니며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사미 항구에 앉아 이타카를 바라보며 이 질문을 떠올려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이오니아 제도의 특별함
케팔로니아를 포함한 이오니아 제도(코르푸, 레프카다, 이타카, 자킨토스 등)는 그리스의 다른 섬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게해의 섬들이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반면, 이오니아 제도는 한 번도 오스만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베네치아 공화국(1386~1797), 이어서 프랑스, 그리고 영국(1815~1864)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이 역사가 건축, 음악, 요리, 심지어 방언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오니아 제도의 이탈리아적 분위기 — 파스텔 색상의 건물, 오페라 전통, 소프리토(sofrito) 같은 요리 — 는 이 독특한 역사의 산물입니다. 피스카르도에서 그 흔적을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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