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샹그릴라! 그리스!/그리스여행기 (60) 썸네일형 리스트형 [두번째 그리스여행]20 모넴바시아: 에게해의 두브로브니크 스파르타의 주력 항구는 남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항구도시 기티오Githio였다.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약 50킬로를 더 가면 모넴바시아에 도착한다. 서기 375년 발생한 지진으로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 섬이 된 이곳은 방파제 덕에 다시 육지와 연결되었다. 얼핏보면 제주도 성산 일출봉을 보고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이 닮았다. 모넴바시아는 그리스어의 모네mone와 엠바시아emvasia의 합성어로 ‘하나의 입구’라는 뜻이다. 역사 몽셍미쉘이 커다란 수도원 섬인데 반해 모넴바시아는 583년에 세워진 비잔틴 제국의 요새였다. 돌 산의 정상은 마치 테이블처럼 평평해 병영은 물론 30명을 먹일 수 있는 농지까지 요새 안에 둘 수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3년간이나 수성을 한 적까지.. [두번째 그리스여행]19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 - 레오니다스 왕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만티네아에서 정남향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북쪽에서 접근하는 길은 산들을 넘어야 한다. 스파르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자연 방벽이라고 할 엄청난 산들이다. 산 속에 묻힌 농업국가가 스파르타 였다. 그들은 일단 터를 잡고 나서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데 열성적이지 않았다. 수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아테네와는 대조적이다. 성벽에 가까이 다가가 스파르타 장갑 보병의 눈으로 주위의 산 마루를 살펴본다. 펠로폰네소스 북부에서 접근하는 길은 살짝 내리막인 길과 평지를 달리다 바로 스파르타 도심을 관통한다. 편도 2차선인 도로는 가로수가 심어진 화단이 중앙선을 대신한다. 평범한 지방의 소도시. 이 조용한 마을이 스파르타이다. 역사 스파르타는 그리스 고대사 그 .. [두번째 그리스여행]18 미스트라: 찬란했던 비잔틴제국 제2의 도시 산위의 도시, 미스트라는 15세기 서양 문명의 중심지였다. 스파르타를 멀리 내려다 보는 산 정상에 버려진 많은 건물의 잔해는 어떤 것은 아직도 건재하다.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점령당한 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많은 것이 의미를 잃어갔다. 찬란했던 시절을 증언이라도 하듯 교회 안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달리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빈 자리가 없다. 아름답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절벽을 따라 세워진 건물들은 시간이 멈춘 듯 15세기 비잔틴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data-matched-content-ui-type="image_stacked" data-matched-content-rows-num="4,2" data-matched-content-columns-num="1,2" 유적으로 들어가는 망루는.. [두번째 그리스여행]17 만티네이아: 스파르타 아테네 테바이의 격돌 만티네이아 Mantinea는 그리스에서 보기 드문 평야 지대이다. 그래서 고대의 판도를 바꾼 대규모 전투가 두번이나 치러졌다. 그 첫번째 전투는 기원전 418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때이다. 당시 스파르타의 왕은 아르키다무스 왕의 아들 아기스였다. 이 어린 왕은 기원전 420년 경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을 끌고 참전했으나 아테네와 교전을 피하고 동맹과 상의도 없이 휴전을 체결한 후 귀국하였다. 분노한 스파르타 시민들이 10000드라크마의 벌금(50억원상당)을 물리고 집까지 부숴버렸다. 궁지에 몰린 왕은 다른 전투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집정관들에게 호소하여 조건부 허락을 받는다. 조건은 왕이 군사행동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상의해야하는 고문을 데리고 출전하라는 것. 이윽고 전투는 만티네이아 평야에서 벌.. [두번째 그리스여행]16 오르코메노스: 펠로폰네소스의 전략적 요충 그리스에는 오르코메노스가 두군데 있는데, 하나는 아테네 북쪽의 보이오티아 지방에, 나머지 하나는 펠로폰네소스의 아르카디아 지방에 있다. 네메아 서쪽 첩첩 산 중, 산 꼭대기에… 이곳은 기원전 420년경 아르고스에 점령당한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자신들의 영토라 생각하던 오르코메노스를 동맹이지만 경쟁자이기도 한 아르고스가 점령하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어린 왕 아기스가 연합군에 참가한 나라와 상의도 없이 아테네와 휴전을 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된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왕에게 10000드라크마의 벌금을 물리고 왕의 집을 부숴버렸다. 10드라크마가 황소 한마리 값이니 황소 천마리, 지금 돈으로 50억의 벌금을 왕에게 매긴 것도 대단하지만 집까지 부순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시민.. [두번째 그리스여행]15 레비디: 아르카디아의 아름다운 고지 마을 아르카디아 중앙의 그림같은 산골 마을 레비디 Levidi는 고도 86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 남쪽은 끝없는 산이 펼쳐지지만 북쪽에는 넓은 평야가 있다. 그리고 그 평야의 너머에 오르코메노스 유적이 있다. 한 여름에도 이 마을에는 높은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붉은 지붕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은 도시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휴가를 많이 오는 곳인듯 작은 펜션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스에서는 보기 드문 평야는 농사를 위한 축복같은 땅이지만 같은 이유때문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전투가 일어난 피의 흔적이 비료가 된 비극의 땅이 평화롭다. 평야 건너편 왼편의 나즈막한 산이 오르코메노스 유적이다.여름의 자외선이 강렬한 속에도 보이는 오르코메노스의 정상.. [두번째 그리스여행]14 네메아: 헤라클레스 전설이 얽힌 고대 그리스 4대 게임 축제개최지 미케네와 코린트 사이는 험준한 산이 가득한 지형이다. 미케네에서 북서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산과 산 사이의 협곡길을 약 삼십분 달리면 고대 네메아에 도착한다. 오늘날의 네메아는 다시 십여분을 더 가야하기 때문에 고대 유적은 평온한 고요함 속에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메아에서는 두 군데를 꼭 들러야 한다. 첫 번째는 박물관과 제우스 신전 유적이 있는 곳이고, 두번째는 네메아 게임이 개최되던 스타디움이다. 지도 상으로 두 곳 사이의 직선 거리는 3-400미터 정도인데 차로 가면 1킬로 남짓이다. 겨울엔 몰라도 여름엔 걸어가는 것을 심각히 재고해야 한다. 역사와 신화 네메아는 역사 속에서 강력한 도시로 위세를 떨친 적이 없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싼 분지지만 물이 풍부해 수풀이 울창하고 방목에 적당하다. 코린.. [두번째 그리스여행]13 미케네: 그리스를 정복한 산 속 아가멤논 왕궁 그리스의 첫 문명은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이고, 그 뒤를 이은 것이 미케네 문명이다. 미케네는 아르고스와 코린트의 중간 정도에 있는데, 아르고스에서 가는 길은 평야지대를 지나간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오르막이 되지만 미케네까지는 산이 험하지 않다. 도시는 높지않은 산의 중턱부터 정상에 걸쳐 있고 그 뒤로 두 배는 높은 돌산이 버티고 서 있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연합군이 소아시아에 있는 트로이로 쳐들어 간 기원전 1200년 경의 전쟁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호머Homer는 왕비 ‘헬렌’을 납치해 간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썼지만 요즘의 고고학자들은 흑해로 가는 무역항로를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하려는 다툼으로 해석한다. 헬렌은 스파르타의 왕비다. 그녀의 남편은 메넬라오스이고, 그의 형은 아가멤논이다. 일리..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