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밀티아데스

(5)
[고대 그리스 인물 열전] 마라톤 전투 영웅 밀티아데스 아테네를 빛낸 사람 중에 밀티아데스 Miltiades라는 사람이 있다.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 제국이 아테네를 침략했을때 뛰어난 작전으로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유력한 귀족 집안 출신인 밀티아데스는 아테네가 참주들에 의해 다스려지던 기원전 550년에 올림픽 전차 경주 챔피언인 키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즈음은 아테네에 민주정이 붕괴되고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라는 이름의 독재자로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올림픽 전차 경주에서 세번이나 우승을 해 시민들 사이에 인기가 매우 높았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참주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이 그의 인기를 시샘해 살해했다고 한다. 아테네 민주정을 파괴하고 독재자가 된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가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대를 이..
[드라마 그리스로마신화]12 어미와 이모에게 살해당한 테베왕 펜테우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와 이종사촌 간이다. 즉, 제우스의 연인 세멜레가 펜테우스의 이모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테베의 왕이 된 후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행위를 금지하고 더 나아가 디오니소스를 감금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유는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자들이 벌이는 행위가 타락했다는 것이었다. 술에 취해 광란을 벌이니 그럴수 밖에... 그러나 화가 난 디오니소스는 왕의 어머니 아가베, 이모 이노 등을 자신의 축제에 참가하게 한 후, 취하게 만들고, 이들은 광란상태에서 펜테우스를 짐승으로 착각하고 살해한다.밀티아데스는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한 아테네의 영웅이다. 그런 그가 마라톤 전투를 치른지 일년 만에 아테네 에서 추방당한다. 바로 그를 칭송하던 아테네 시민들의 도편추방 투표에 의해...민중은 디오니소스..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스파르타 테르모필라에 전투 300명의 스파르타 군대를 끌고 레오니다스는 테르모필라에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다른 도시들에서 온 병력 약 7000명과 합류하였다. 가소로운 숫자의 그리스 연합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한 크세르크세스 왕은 사신을 보내 레오니다스에게 그리스 군의 모든 무기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다. "모론 라베!"사신의 말을 들은 레오니다스가 했다는 말이다. 우리 말로는 "와서 가져가라!"는 뜻이다. 작은 도시 스파르타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티셔츠에도 적혀 있는 스파르타 정신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상남자의 멘트.또 다른 일화. 스파르타 군사 한 명이 레오니다스에게 적의 군세를 설명하며 "그들이 화살을 쏘면 하늘을 뒤덮어 어두워 질 정도라고 합니다."라고 하자 했다는 레오니다스의 말. "잘 됐네. 그늘에서 싸울 수 있겠구..
[그리스여행 정보] 페르시아의 2차 그리스 침공: 크세르크세스 진군 마라톤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귀국하자 곧 바로 복수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복수를시작하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아들 크세르크세스 Xerxes가 왕위를 계승한다. 영화 '300'에서 이상한 차림을 한 왕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이 사람. 크세르크세스 왕은 기원전 480년 사르디스를 출발 대군을 이끌고 육로로 진격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헬레스폰트해협을 부교를 건설해 통과한 그는 트라케 Thrace 지방으로 진군하며 계속 병력을 보강했는데 전사만 육군과 해군을 합쳐264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원 인력까지 포함하면 최소 528만명이 이동했다고 한다. 고대 기록이 10배로 뻥튀기 되었 다 해도 26만의 병력을 동원한 것 조차 당시로는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크세르크세스의 침..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1차 그리스 침공: 마라톤 전투 아시아 최강의 제국 페르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아테네. 바람 앞에 선 촛불이 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었으므로 싸움은 해보나 마나한 것 처럼 보였다.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군대가 수백척의 전함을 타고 트라케 해안을 따라 아테네를 향해 항해하여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다.이들의 길잡이는 한 때 아테네의 참주였던 히피아스. 참주는 현대의 독재자에 해당하는데 히피아스는 폭정을 휘두르다 아테네에서 쫒겨났다. 그런 그가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보복을 위해 페르시아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백만대군이란 말이 있지만 현대 전술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페르시아 육군은 10만 명이었다고 한다.이에 비해 아테네는 주변 지역을 탈탈 털다시피해서 모은 9천명이 전부였다.마라톤 평야는 아테네에서 불과..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