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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Dig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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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던타임스"]1차 세계대전과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베르사이유 조약 20세기 초 1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에 동유럽 및 중부유럽의 25% 지역에는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도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넓은 영토 때문에 민족주의를 토대로 평화를 이루려는 생각이 없었다. 전쟁 중에도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비밀조약들을 체결하여 다른 민족이 점유하는 땅을 나눠가졌었다. 프랑스는 1917년 3월 11일 러시아와의 비밀조약에서 러시아의 폴란드 접수와 프랑스의 라인란트 수용을 양해하기로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16년 체결된 비밀 조약 사이크스-피코협정에서 터키의 아랍영토를 떼어내 나눠갖기로 하였다. 이태리는 1915년 런던비밀조약에서 티롤, 달마시아의 지배권을 넘겨받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 왕정이 무너지고 합스부르크가 단독강화를 거부하자 민족주의를 지..
[모던타임스1 digest] 2장 전제주의 유토피아 - 인류의 적, 레닌의 엉터리 공산혁명 1917년 4월 14일 레닌이 오랜 망명생활을 접고 취리히를 떠나 러시아의 페트로그라드로 돌아갔다. 그의 귀환은 독일의 후원으로 가능했는데 독일의 소위 '혁명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것은 일차대전 동안 연합국 편을 든 제정 러시아를 붕괴시키는 전략이었다. 혁명은 레닌에게 종교였다. 그리고 그의 삶은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종교적 맹신에서 나오는 폭력성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떤 이는 레닌의 극단적인 독선과 불관용, 청교도적 태도가 칼뱅과 흡사하다고도 할 정도였다. 그는 수도사처럼 세상의 실제와 격리된 삶을 살며 공산당의 전제군주로 군림했다. 레닌의 혁명은 여러 면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프로레탈리아 혁명과 판이하게 달랐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책임자로 오래 일했던 레닌의 심복 트로츠키는 "당은 당..
[간신론] 1. 간신이 망친 위인 대표: 왕안석, 당 현종 [송나라 왕안석 (1021 - 1086)] 약관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을 받다. 국력이 약한 북송 시대 ( 대관료, 지주 층 비호 정책으로 서민은 빈곤) 군사를 중앙에서 관리하여 변방 수비 약화 (오랑캐에게 공물을 바치며 평화유지) 1065년 국가의 빚이 1500만냥에 이르러 왕조 위기 위기 타개를 위한 왕안석의 개혁 '변법 개혁' (1068-1077)은 수구파의 저항에 부딪쳐 특히 인재 등용에 실패해 간신을 등용함으로써 자멸하고 재상에서 쫒겨나 회한 속에 별세 실각 후 '복건자' (복건지방 놈)이란 뜻으로 간신 여혜경을 뜻함 "여포는 정원을 섬기다 정원을 죽였고, 동탁을 섬기다 동탁을 죽였다. 유뇌지는 왕공을 섬기다 그를 배반했고, 사마원현을 섬기다 그도 배반했다. 이들은 조조와 환현에 의해 죽음을 맞..
[완벽주의자의 행복수업] 두 얼굴을 가진 완벽주의 어떤 긍정적인 성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바꾸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신뢰성이 높은 사람은 그러한 성질로 인해 완고하다는 말을 듣기가 쉽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경직된 사고를 한다고 보이기도 하는데 본인이 경직적이거나 완고한 줄을 알면서도 고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즉, 완고함을 고치다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얻게 될까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관성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 이유는 마음 한구석에 경직성을 버리면 일관성까지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감수성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 나치게 걱정이 많은 사람은 걱정하지 않으면 ..
[바르바로싸] 2차세계대전 독소전쟁-개전 당시 소련군 상황 러시아는 독일이 침공할 당시 독일이 평가한 것 보다 훨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탱크의 수는 개전 당시 24000대나 되었다. 그때까지 생산된 탱크의 성능은 떨어졌지만 압도적인 숫자는 독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히틀러 조차 탱크가 2만대나 있는 것을 알았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력은 보병지원용 T-26 전차와 시속 72킬로미터를 자랑하는 BT-7 전차였으나 허술한 관리로 전체의 30% 정도만 실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였다.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개전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최고 성능 전차인 T-34를 개발완료하고 1500여대를 실전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탱크를 포함한 소련군의 병력규모는 개전당시 540만명에 달해 세계 최강의 수준이었던 사실도 중요하다...
[바르바로싸] 제2차세계대전 독소전쟁 - 배경 2차 대전 개전 후 독일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격파한 것은 불가사의하기 까지 하다. 아래 표에 양국의 군사력을 보면 더욱 독일의 승리가 믿기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병력 250만 500만 전차 2400대 3500대 야포 7500문 10200문 차량 120000대 300000대 전투기 1200대 1100대 폭격기 1700대 1000대 한마디로 공군력은 독일이 앞서있었지만 육군은 압도적으로 프랑스의 우위였다. 그런데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채 마지노 선 만 믿다가 프랑스는 패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독일은 프랑스 점령 후 영국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바다 너머의 영국을 점령하는 것은 히틀러의 생각처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영국은 미국과 소련이 참전하여 독일을 압박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버..
[좋은 글] "관계수업" 중에서 사랑보다 증오를 선택하는 동기 feeling good together를 원제로 하는 관계수업은 인간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이 분야의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먼저 사람들은 사랑대신 증오를 선택하기 때문에 관계가 적대적이 된다는 설명을 소개합니다. 1. 권력욕과 지배욕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보다 타인을 지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배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기 때문에 우호적인 관계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2. 복수심 복수하고 싶다는 욕구는 매우 강렬하므로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자신에게 앙갚음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그것이 관계를 망치는 일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개선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상충하..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3) 미국의 헛수고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국제 무역의 원동력인 금융신용 financial credit의 3분의 2가 런던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 세계 해외 장기 투자의 50% 이상도 영국 차지였다. 영국은 상업어음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신용 우위를 누리며 국제 결제 통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상황을 바꿔 버렸다. 유럽 주요 국가의 공업과 농업이 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미국 공산품과 농산품 수요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자금이 군수 산업에 집중되면서 자금 부족이 심화되었다. 통화를 남발한 파운드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그와 함께 무역신용도 감소되어갔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상업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런던 대신 뉴욕으로 몰려 들었다. 결국 파운드는 국제 결제통화의 자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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