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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Dig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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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3) 미국의 헛수고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국제 무역의 원동력인 금융신용 financial credit의 3분의 2가 런던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 세계 해외 장기 투자의 50% 이상도 영국 차지였다. 영국은 상업어음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신용 우위를 누리며 국제 결제 통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상황을 바꿔 버렸다. 유럽 주요 국가의 공업과 농업이 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미국 공산품과 농산품 수요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자금이 군수 산업에 집중되면서 자금 부족이 심화되었다. 통화를 남발한 파운드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그와 함께 무역신용도 감소되어갔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상업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런던 대신 뉴욕으로 몰려 들었다. 결국 파운드는 국제 결제통화의 자리를 ..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2): 준비통화 바꿔치기 영국이 파운드화를 금 부족현상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고안한 화폐본위제는 "물을 기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기극처럼 황당한 화폐이론이었다. 금환본위제라는 사상 초유의 제도를 만든 잉글랜드은행 총재 노먼은 미국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금 보유량이 영국의 다섯 배에 달하는데다 오래전부터 영국의 금융 패권 지위를 호시탐탐 노려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공격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배상금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에 125억 달러의 전쟁배상금을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산업기반이 붕괴된 독일이 그 지불을 계속 미루고 있어 갈등이 심화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전쟁배상금을 받아 미국에 진 빚을 갚겠다고 선언했으므로 결국 영국과 프랑스에 돈을 빌려준 미국이 중재에 나섰..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1) 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독일 마르크는 엄청난 가치폭락을 경험했다. 1923년 11월 20일 미국의 1달러는 4조 2천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1달러가 11조 마르크를 기록했다. 모든 것이 부서진 독일이었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없어진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먹고 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승국에게 전쟁 배상금 125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900억 달러였던 것을 미국이 나서 중재한 덕에 줄어든 것이었다.1차 세계대전에 유럽 전체가 지출한 자금은 2천억 달러였다. 그리고 유럽 16개 연합국은 미국에 총 120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영국이 50억 달러, 프랑스는 40억 달러를 미국으로 부터 빌렸다. 독일은 총 47..
[엘리트 제국의 몰락] 부패한 엘리트 계급이 좌파, 포퓰리즘 정권을 부른다. 엘리트들은 지금까지도 대중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으며 대중의 고충을 점점 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엘리트와 대중의 거리는 최근 수십 년간 점점 더 멀어졌다. 이는 무엇보다도 막대한 부 혹은 소득 차이와 관련이 있다. 아무리 느슨하게 보더라도 엘리트 충 대부분의 월수입은 1만 유로 단위 이상으로 전체 소득자 중 최상위 1%에 속한다. 게다가 그들은 대개 평균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이들은 대도시에서 급격하게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가아니라 오히려 수혜자다. 이들의 일상 또한 일반인과는 공간에서부터 격리되어 있다. 건강이나 자녀 교육 같은 문제에서도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없는 해결책이 있다. 엘리트들은 대개 도시의 부유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 자녀들이 양호한 조건의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다...
[좋은글]"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중 여섯번째 교훈: 외로운 이들에게 대부분의 나무는 누가 외진 곳에 일부러 가져다 심거나 씨앗이 빈 들에 떨어진 경우를 제외하곤 저 혼자 자라는 법이 없다. 어릴 적부터 숲에서 주변 나무들과 어울리며 어떻게 해야 큰 나무가 되는지를 배우면서 몸집을 불려 가게 마련이다.하지만 개박달나무는 작정이라도 한 듯 능선의 바위틈에서 저 혼자 평생을 산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함께 버텨 줄 나무가 없기에 줄기는 꼬여 있기 일쑤고 몸집도 크게 키우지 못한다. 스스로 떨군 낙엽을 양분 삼아 추위를 이겨 내는 숲속 나무들과 달리, 홀로 사는 개박달나무는 심한 바람 덕에 제 몸에서 나온 낙엽마저 가져다 쓸 수 없다. 그래서 개박달나무는 위로 높이 자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신 뿌리를 깊게 내린다.모든 나무가 햇볕을 필요로 하지만 개박달나무는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좋은글]"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다섯번째 교훈: 소나무의 지혜 소나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왕가를 비롯해 관청이나 양반의 가옥을 지을 때 소나무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재료였다. 반가의 상징이랄까.소나무가 한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이렇듯 역사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어떤 나무와도 견줄 수 없는 그만의 강인함 때문일 것이다. 소나무는 해만 충분히 들면 산꼭대기 바위틈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대체 그 강인한 생명력은 어디에 기인한 걸까?소나무는 보통 나무들과 자라는 방식이 다르다. 대부분의 나무는 봄에 새싹을 틔우고 나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계속 가지가 자란다.딱히 병충해나 폭풍우 같은 위기를 맞지 않는다면 앞날을 크게 염려하지 않고 무럭무럭 성장..
[좋은글]"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네번째 교훈 어떤 생명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한 바위 땅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것이 바로 작은 풀들과 가시를 단 나무 들이다. 뜨거운 햇살과 건조한 땅 위에서도 살아남는 가시를 단 나무들의 질긴 생명력 덕에 자갈밭은 조금씩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고, 그 덕에 한라산 자락에서 날아든 씨앗들이 점차 터를 잡게 되었다.숲이 조금씩 틀을 갖추면 가시덤불은 큰키나무들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고 다른 불모지로 이사를 간다. 마치 공사장의 가림막처럼 말이다. 건물이 완성되면 가림막을 걷어 내 짠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듯 곶자왈의 가시덤불들도 그러하다. 그래서 가시를 단 나무들이 없는 숲은 그만큼 성숙했음을 의미한다.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작은 생명들이 자랄 때까지 수호자 역할을 하는 그들을 가리켜 숲의 ..
[좋은글]"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세번째 교훈 생존을 위한 버팀은 한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할 길이 없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위협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어떤 재난이 와도 도망칠 재간이 없기에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구책을 최대한 동원해 그 시간들을 버텨 내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그러니 가시투성이의 흉한 모습으로 변하면서까지 버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