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Digest (76) 썸네일형 리스트형 [완벽주의자의 행복수업] 두 얼굴을 가진 완벽주의 어떤 긍정적인 성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바꾸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신뢰성이 높은 사람은 그러한 성질로 인해 완고하다는 말을 듣기가 쉽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경직된 사고를 한다고 보이기도 하는데 본인이 경직적이거나 완고한 줄을 알면서도 고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즉, 완고함을 고치다가 신뢰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얻게 될까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관성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 이유는 마음 한구석에 경직성을 버리면 일관성까지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감수성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 나치게 걱정이 많은 사람은 걱정하지 않으면 .. [바르바로싸] 2차세계대전 독소전쟁-개전 당시 소련군 상황 러시아는 독일이 침공할 당시 독일이 평가한 것 보다 훨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탱크의 수는 개전 당시 24000대나 되었다. 그때까지 생산된 탱크의 성능은 떨어졌지만 압도적인 숫자는 독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히틀러 조차 탱크가 2만대나 있는 것을 알았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력은 보병지원용 T-26 전차와 시속 72킬로미터를 자랑하는 BT-7 전차였으나 허술한 관리로 전체의 30% 정도만 실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였다.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개전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최고 성능 전차인 T-34를 개발완료하고 1500여대를 실전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탱크를 포함한 소련군의 병력규모는 개전당시 540만명에 달해 세계 최강의 수준이었던 사실도 중요하다... [바르바로싸] 제2차세계대전 독소전쟁 - 배경 2차 대전 개전 후 독일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격파한 것은 불가사의하기 까지 하다. 아래 표에 양국의 군사력을 보면 더욱 독일의 승리가 믿기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병력 250만 500만 전차 2400대 3500대 야포 7500문 10200문 차량 120000대 300000대 전투기 1200대 1100대 폭격기 1700대 1000대 한마디로 공군력은 독일이 앞서있었지만 육군은 압도적으로 프랑스의 우위였다. 그런데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채 마지노 선 만 믿다가 프랑스는 패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독일은 프랑스 점령 후 영국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바다 너머의 영국을 점령하는 것은 히틀러의 생각처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영국은 미국과 소련이 참전하여 독일을 압박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버.. [좋은 글] "관계수업" 중에서 사랑보다 증오를 선택하는 동기 feeling good together를 원제로 하는 관계수업은 인간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이 분야의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먼저 사람들은 사랑대신 증오를 선택하기 때문에 관계가 적대적이 된다는 설명을 소개합니다. 1. 권력욕과 지배욕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보다 타인을 지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배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기 때문에 우호적인 관계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2. 복수심 복수하고 싶다는 욕구는 매우 강렬하므로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자신에게 앙갚음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그것이 관계를 망치는 일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개선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상충하..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3) 미국의 헛수고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국제 무역의 원동력인 금융신용 financial credit의 3분의 2가 런던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 세계 해외 장기 투자의 50% 이상도 영국 차지였다. 영국은 상업어음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신용 우위를 누리며 국제 결제 통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상황을 바꿔 버렸다. 유럽 주요 국가의 공업과 농업이 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미국 공산품과 농산품 수요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자금이 군수 산업에 집중되면서 자금 부족이 심화되었다. 통화를 남발한 파운드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그와 함께 무역신용도 감소되어갔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상업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런던 대신 뉴욕으로 몰려 들었다. 결국 파운드는 국제 결제통화의 자리를 ..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2): 준비통화 바꿔치기 영국이 파운드화를 금 부족현상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고안한 화폐본위제는 "물을 기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기극처럼 황당한 화폐이론이었다. 금환본위제라는 사상 초유의 제도를 만든 잉글랜드은행 총재 노먼은 미국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금 보유량이 영국의 다섯 배에 달하는데다 오래전부터 영국의 금융 패권 지위를 호시탐탐 노려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공격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배상금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에 125억 달러의 전쟁배상금을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산업기반이 붕괴된 독일이 그 지불을 계속 미루고 있어 갈등이 심화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전쟁배상금을 받아 미국에 진 빚을 갚겠다고 선언했으므로 결국 영국과 프랑스에 돈을 빌려준 미국이 중재에 나섰..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1) 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독일 마르크는 엄청난 가치폭락을 경험했다. 1923년 11월 20일 미국의 1달러는 4조 2천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1달러가 11조 마르크를 기록했다. 모든 것이 부서진 독일이었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없어진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먹고 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승국에게 전쟁 배상금 125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900억 달러였던 것을 미국이 나서 중재한 덕에 줄어든 것이었다.1차 세계대전에 유럽 전체가 지출한 자금은 2천억 달러였다. 그리고 유럽 16개 연합국은 미국에 총 120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영국이 50억 달러, 프랑스는 40억 달러를 미국으로 부터 빌렸다. 독일은 총 47.. [엘리트 제국의 몰락] 부패한 엘리트 계급이 좌파, 포퓰리즘 정권을 부른다. 엘리트들은 지금까지도 대중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으며 대중의 고충을 점점 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엘리트와 대중의 거리는 최근 수십 년간 점점 더 멀어졌다. 이는 무엇보다도 막대한 부 혹은 소득 차이와 관련이 있다. 아무리 느슨하게 보더라도 엘리트 충 대부분의 월수입은 1만 유로 단위 이상으로 전체 소득자 중 최상위 1%에 속한다. 게다가 그들은 대개 평균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이들은 대도시에서 급격하게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가아니라 오히려 수혜자다. 이들의 일상 또한 일반인과는 공간에서부터 격리되어 있다. 건강이나 자녀 교육 같은 문제에서도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없는 해결책이 있다. 엘리트들은 대개 도시의 부유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 자녀들이 양호한 조건의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다...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