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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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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3) 미국의 헛수고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국제 무역의 원동력인 금융신용 financial credit의 3분의 2가 런던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 세계 해외 장기 투자의 50% 이상도 영국 차지였다. 영국은 상업어음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신용 우위를 누리며 국제 결제 통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상황을 바꿔 버렸다. 유럽 주요 국가의 공업과 농업이 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미국 공산품과 농산품 수요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자금이 군수 산업에 집중되면서 자금 부족이 심화되었다. 통화를 남발한 파운드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그와 함께 무역신용도 감소되어갔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상업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런던 대신 뉴욕으로 몰려 들었다. 결국 파운드는 국제 결제통화의 자리를 ..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1) 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독일 마르크는 엄청난 가치폭락을 경험했다. 1923년 11월 20일 미국의 1달러는 4조 2천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1달러가 11조 마르크를 기록했다. 모든 것이 부서진 독일이었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없어진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먹고 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승국에게 전쟁 배상금 125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900억 달러였던 것을 미국이 나서 중재한 덕에 줄어든 것이었다.1차 세계대전에 유럽 전체가 지출한 자금은 2천억 달러였다. 그리고 유럽 16개 연합국은 미국에 총 120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영국이 50억 달러, 프랑스는 40억 달러를 미국으로 부터 빌렸다. 독일은 총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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