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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Digest2020. 4. 12. 13:45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국제 무역의 원동력인 금융신용 financial credit의 3분의 2가 런던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 세계 해외 장기 투자의 50% 이상도 영국 차지였다. 영국은 상업어음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신용 우위를 누리며 국제 결제 통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상황을 바꿔 버렸다. 유럽 주요 국가의 공업과 농업이 전쟁으로 파괴되면서 미국 공산품과 농산품 수요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자금이 군수 산업에 집중되면서 자금 부족이 심화되었다. 통화를 남발한 파운드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고 그와 함께 무역신용도 감소되어갔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상업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런던 대신 뉴욕으로 몰려 들었다. 결국 파운드는 국제 결제통화의 자리를 미국에게 내어주기 시작했다. 

1924년 달러화 표시 상업어음 발행액은 파운드화 표시 어음의 두배를 넘기도 했다. 달러가 준비통화로서 국제 결제통화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구축했다. 

1924년 12월 잉글랜드은행 총재 노먼은 비밀리에 뉴욕으로 갔다. 미국 유력 은행가들은 영국의 금본위제 회복을 주장하였다. 영국도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제금융 중심지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금본위제를 회복이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1925년 1월 영국은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선언한다.

하지만 영국이 금본위제로 회귀한 것은 실수였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며 분명해 졌다. 영국은 1925년 이후 15년 동안 경제가 침체되는 홍역을 치렀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본위제는 충분한 금을 보유하고 그 가치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제도인데 1925년 당시 영국에 금이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당장은 금이 없어도 무역 흑자가 나면 금이 유입되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 하지만 1925년 이후 영국은 미국보다 산업경쟁력이 떨어져 무역 적자가 만연해 있었다.

국제 결제통화의 조건 중 하나는 충분한 양이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금이 줄어드는 영국은 통화량을 늘릴 수가 없었고 자연히 국제 결제 통화의 위치를 잃게 되었다.

당시 금은 거의 모두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파운드가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이상 달러의 노예 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즉, 미국은 막강한 금 보유고를 이용해 소위 '달러본위제'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달러본위제는 금 보유량이 통화량을 결정하는 금 본위제와 달리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는 제도이다. 공개시장조작은 통화량을 줄여야 할 때는 중앙은행이 채권을 일반 시중은행에 팔고 대금을 받음으로써 시중 통화량을 흡수하고, 채권을 사들이고 대금을 시중은행에 지불하여 통화량을 늘리는 제도이다.

달러본위제의 전제 조건은 각국의 달러화에 대한 수요에 달려 있다. 1차 세계대전 종식 후 세계에서 달러화 수요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미국이 유럽 각국에 전쟁 채무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924년 말 도스의 방안에 따라 미국은 2억 달러를 독일에 대출해 주었다. 달러화가 독일에 유입되자 독일 경제가 짧게나마 반등에 성공했다.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에 2억5천만 달러의 전쟁배상금 1차분을 지불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외화준비금도 증가했고 신용과 채무 규모도 증가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 전쟁 채무를 상환했으므로 미국을 출발한 달러는 독일, 영국, 프랑스를 거쳐 다시 미국으로 이자와 함께 돌아왔다. 달러가 경유한 모든 국가는 화폐의 공급과 채무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은 독일에 수십억 달러의 대출을 추가로 승인하면서 달러의 유럽 순회공연은 그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되었고 화폐와 채무 규모가 급증했다. 

1927년 영국은 금 재고가 바닥나 금본위제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그해 7월 뉴욕연방준비은행은 재할인 금리를 4%에서 3.5%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으로 들어오는 금을 억제하고 영국으로 더 많은 금이 유입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금리 인하는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해 유례없는 투기적 상승세가 나타났고 그해 4분기에 외국의 채권은 미국 시장에서 최다 판매 기록을 달성했다. 채권을 사며 지불한 달러는 미친듯이 해외로 흘러나갔다.


주식시장이 투기적으로 변하고 버블이 발생하자 뉴욕연방준비은행은 금리를 3.5%에서 5%로 인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금리에 끌린 자금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런던 시장의 금 역시 미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1929년 10월 미국발 채무 위기가 폭발했다. 당시 미국의 채무규모는 GDP의 300%에 달했다. 보유 금으로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훨씬 초과한 상태였다. 은행들이 지나친 채무를 회수하기 시작하자 증시는 붕괴했다. 대공황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이 달러를 가지고 유럽을 상대로 벌이던 폭탄돌리기에서 실제 폭탄이 터지자 유럽과 미국의 은행들이 파산했다. 

침체에 빠진 유럽은 미국에게 달러화 채무 상환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짐으로서 달러의 영향력에 치명타를 입혔다. 결국 결제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상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