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독일 마르크는 엄청난 가치폭락을 경험했다. 1923년 11월 20일 미국의 1달러는 4조 2천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1달러가 11조 마르크를 기록했다. 모든 것이 부서진 독일이었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없어진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먹고 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승국에게 전쟁 배상금 125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900억 달러였던 것을 미국이 나서 중재한 덕에 줄어든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유럽 전체가 지출한 자금은 2천억 달러였다. 그리고 유럽 16개 연합국은 미국에 총 120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영국이 50억 달러, 프랑스는 40억 달러를 미국으로 부터 빌렸다. 독일은 총 470억 달러를 전쟁 중에 지출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빚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화폐를 발행해서 충당했다. 전쟁 후 과도한 화폐발행은 앞서 언급한 마르크의 폭락으로 나타났다.
1923년 말, 독일제국 중앙은행 총재 히알마르 사흐트 Hjalmar Schacht는 영국의 잉글랜드은행 총재 몬테규 노먼 Montague Norman을 만나 전쟁 배상금을 내기 위해서도 독일 경제가 회생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2500만 달러의 대출이 필요하다고 간청했다. 사흐트는 2500만 달러의 차관을 영국이 제공해 준다면 독일은 영국 파운드화를 준비통화로 보유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잉글랜드은행 총재는 사흐트의 제안에 끌려 차관을 제공하기로 한다.
준비통화는 요즘 '외화준비금'이라고 불린다. 외화준비금은 외국환 은행이 보유하는 외화 자산 중 일정액을 외국 은행에 예금하거나 외국 정부의 단기 증권 같은 유동성 높은 자산 형태로 보유할 것을 강제하는 제도이다. '외환준비금'이라고도 한다.
금본위제는 보유한 금의 가치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제도이며 1차 세계대전 전에 영국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면서 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총 60억 달러의 황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 45억 달러가 미국 차지였다.
금이 부족한 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폭락할 수 밖에 없다. 또 세계 기축통화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 잉글랜드은행 총재 노먼은 영국 파운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파운드화를 금과 같이 취급하고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의 준비통화에 황금이외에 파운드를 편입시키는 '화폐본위제'를 국제연맹에서 제안하고 통과시켰다 (1922년 제노바 회의).
노먼은 금환본위제라는 새로운 화폐본위제를 발명해냈다. 금환본위제는 이름 그대로 통화의 가치를 금과 다른 금본위국의 외국환 가치에 연결하는 제도였다. 그 이후 각국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은 금과 외국환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이 화폐본위제의 확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알고 있던 독일제국 중앙은행 총재 사흐트는 노먼에게 독일이 파운드를 준비통화로 보유할 것이란 매력적인 미끼를 던집으로써 2500만 달러의 차관을 확보하게 된다. 이 당시에는 독일, 영국 모두에게 win-win 전략이었던 것이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영국의 파운드화 경쟁력 제고 전략은 미국이 끼어들며 시궁창에 빠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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