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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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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정보]스파르타의 팽창과 헬로이타이 탄생: 메세니아 정복 뤼쿠르고스Lycurgus의 개혁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스파르타는 메세니아 Messenia, 아르카디아 Arcadia, 아르골리스 Argolis 순으로 주변국가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첫 정복 전쟁인 메세니아 정벌이 가장 격렬했다. 두차례의 전쟁 중 첫번째는 기원전 743년 부터 724년까지 19년이나 걸렸는데 시작은 메세니아 청년들이 스파르타 처녀를 납치해 간 사건때문이었지만 사실 스파르타는 오랫동안 메세니아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려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때문에 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트로이, 메세네 등...메세니아 사람들은 용맹했지만 스파르타엔 비할 바가 못되어 연전연패 산꼭대기 마을인 이토메 Ithome까지 밀려났다. 메세네의 유적..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시민의 삶 스파르타는 기원전 14세기 경 도리아인이 유럽의 북쪽에서 침입, 점령하고 지배했다. 그 과정에서 스파르타에 사는 사람은 세 계급으로 나뉘어졌다. 제1계급인 시민은 '호모로이'라고 부르는데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계급이다. 모두 군인으로 60세까지 복무하였다. 제2계급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페리오이코스'라고 불리는 계급으로 땅도 소유할 수 있고 군대에도 참여하여 육군에서 홉라이트 hoplites, 해군에선 에피바스테스 epibastes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상당한 자유를 누린 이 계급은 몰락한 도리아 족이나 도리아 인에게 크게 저항하지 않은 아카이아 인으로 구성되었다. 제3계급은 헬리오테스 또는 헬로이타이 Helots 계급이다. 이들은 노예 계급으로 스파르타 경제를 유지하는 농장등에서 일하는 ..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교육시스템: 니들이 스파르타를 알아? 요즘은 거의 사용조차 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에는 혹독한 훈련을 일컬어 스파르타 식 교육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고대 스파르타 사람들의 교육과 훈련에 비하면 요즘의 어지간히 독한 훈련도 스파르타 식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없다. 우선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아이를 스파르타의 원로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아이에게 이상이 없으면 부모에게 돌려주어 키우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로 산에 버려진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일곱살이 될 때까지 자라는데 Homer의 오딧세이와 일리아드 이야기를 포함한 그리스 영웅담과 전설을 배운다.일곱살이 되면 아이는 부모 슬하를 떠나 공립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소년들은 선배들에 의해 군사훈련을 받고 소녀들은 가사일과 군사 훈련을 함께 ..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의 정치시스템과 독특한 풍습 스파르타는 다른 어느 그리스 도시국가들과도 다른 독특한 풍습과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다른 도시가 민주주의를 채택한 뒤에도 왕정을 유지했다. 게다가 왕이 두명이었다.도리아 인과 함께 돌아와 펠로폰네소스를 정복한 헤라클레스의 후손 중에 아리스토데무스는 코린트 해협을 건너기 전에 나우팍토스에서 죽는다. 그에게는 쌍동이 아들 프로클레스와 에우뤼스테네스가 있었는데 두명이 동시에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전통으로 굳어져 두명의 왕을 갖게되었다. 민회는 아펠라Apella라고 부르는데 18세 이상의 스파르타 시민으로 구성한다. 한편, 두명의 왕은 민회에서 선출된 28명의 60세 이상 종신 원로들과 합친 30명으로 로마의 원로원과 유사한 게루시아Gerusia를 구성한다. 민회는 스파르타를 구성하는 ..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근간을 세운 뤼쿠르구스 도리아 인이 남진하면서 펠로폰네소스를 정복한 초기엔 아르고스가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하지만 뤼쿠르구스 Lycurgus의 개혁 이후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를 넘어 전 그리스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뤼쿠르구스는 스파르타의 왕 에우노무스Eunomus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그의 형 폴뤼덱테스Polydectes가 왕이 되었는데 그 마저도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다. 그런데 임신 중이던 형수가 뤼쿠르구스에게 접근하여 적통인 아이를 제거하고 둘이 권력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악녀! 뤼쿠르구스는 이에 응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다가 아들이 태어나자 '민중의 기쁨'이란 뜻의 카릴라오스Charilaus로 이름짓고 스파르타의 군중에게 '미래의 왕'이라고 선언한 후, 초연히 스파르타를 떠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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