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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근간을 세운 뤼쿠르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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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아 인이 남진하면서 펠로폰네소스를 정복한 초기엔 아르고스가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하지만 뤼쿠르구스 Lycurgus의 개혁 이후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를 넘어 전 그리스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뤼쿠르구스는 스파르타의 왕 에우노무스Eunomus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그의 형 폴뤼덱테스Polydectes가 왕이 되었는데 그 마저도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다. 그런데 임신 중이던 형수가 뤼쿠르구스에게 접근하여 적통인 아이를 제거하고 둘이 권력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악녀!


뤼쿠르구스는 이에 응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다가 아들이 태어나자 '민중의 기쁨'이란 뜻의 카릴라오스Charilaus로 이름짓고 스파르타의 군중에게 '미래의 왕'이라고 선언한 후, 초연히 스파르타를 떠나 오랜 기간 떠돌아 다녔다. 그는 그 시간동안 여러 나라의 체제를 살피고 스파르타 개혁 방안을 연구했다.

그가 오랜 방랑 끝에 스파르타로 돌아갔을 때, 조카 카릴라오스가 통치를 하고 있었지만 나라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당시 체제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뤼쿠르구스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오랜 세월 마음 속에 간직했던 개혁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델파이의 신탁을 청했다. 

[델파이 아폴로 신전은 높은 산위에 있다.]


신들의 지지를 약속한 신탁에 고무된 그는 30명의 무장한 스파르타 유력자들을 대동하고 시장거리인 아고라에 나가 개혁을 선포한다. 이후 격렬한 수구파의 저항을 모두 제압하고 개혁을 완성하자 뤼쿠르구스는 또 다시 초연히 스파르타를 떠난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그가 만든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맹세 하나만을 받고...


그는 제일 먼저 델파이로 가서 신탁을 구했다. 신탁은 '스파르타인들이 뤼쿠르구스의 개혁을 보존하기만 하면 계속 번영할 것'이었다. 뤼쿠르구스는 스파르타의 번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뤼쿠르구스의 첫번째 개혁은  게루시아Gerousia의 설치였다. 로마의 원로원에 해당하는 기구로 평민 28명과 왕 2인을 더해 30명으로 구성되며 왕과 맞먹는 권력을 행사했다.  이전의 스파르타는 민주주의와 군주주의 또는 무정부 상태와 독재 상태의 극단을 오가고 있었는데 다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게루시아가 생긴 후로 정치가 안정을 되찾았다. 게루시아는 민회가 선동가에 의해 오염되는 경우에 민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스파르타의 권력 핵심인 최고행정관, 에포로스 ephors는 뤼쿠르구스 사망 후 생겼다. 당시의 왕 테오폼푸스 Theopompus는 왕이 누리던 권력의 상당부분을 다섯명의 에포르에 양도했는데 그 이후 스파르타 인들의 왕에 대한 질시가 사라졌다. 이것은 끝까지 왕의 일인지배를 고집하다 왕정이 사라진 아르고스와 메세네의 경우와 대비된다. 


뤼쿠르구스의 개혁 중 가장 독특하고 또한 유명한 것은 syssitia, 즉 공동식사제도 였다. 스파르타의 모든 남성은 1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에서 항상 식사를 해야 했는데 심지어 아내와의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왕도 예외일 수 없었다. 따라서 여인네들은 7세가 넘은 남자와는 식사를 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대부분 여자들끼리 모여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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