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강의 제국 페르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아테네. 바람 앞에 선 촛불이 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수많은 전
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었으므로 싸움은 해보나 마나한 것 처럼 보였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군대가 수백척의 전함을 타고 트라케 해안을 따라 아테네를 향해 항해하여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
다.
이들의 길잡이는 한 때 아테네의 참주였던 히피아스. 참주는 현대의 독재자에 해당하는데 히피아스는 폭정을 휘두르다 아테네에서 쫒겨났다. 그런 그가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보복을 위해 페르시아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
백만대군이란 말이 있지만 현대 전술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페르시아 육군은 1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테네는 주변 지역을 탈탈 털다시피해서 모은 9천명이 전부였다.
마라톤 평야는 아테네에서 불과 4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산길이라고는 해도 며칠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인 것
이다.
당시 아테네의 지휘관은 밀티아데스 Miltiades. 정말 놀랍게도 그는 9000명의 아테네 육군과 동맹도시 플라테이아 Platea의 1000명을 이끌고 마라톤으로 달려간다.
마라톤 평야. 멀리 보이는 산 너머에 아테네가 있다.
아테네 군사의 동상. 페르시아 군대보고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사진 오른쪽 아래의 구릉이 전사한 아테네 군사의 무
덤.
그리고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승리를 거둔다. 바로 마라톤 전투.
페르시아 전사자 6400명 대 아테네 전사자 192명. 대충 30:1.
한편 스파르타는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아테네의 동맹이었지만 마라톤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어
처구니 없다.
'보름달이 뜬 밤에 원정을 출발해야 승리한다.'는 스파르타의 미신인지, 전통인지 때문에 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편 플라테이아는 이 전투이후 아테네 최고의 동맹으로 부상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도왔기 때문. 하지만 훗날 펠
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아테네의 배신아닌 배신으로 잿더미가 되고 만다.
한편 처절한 패배를 지켜 본 다리우스는 비참한 심경으로 페르시아로 돌아가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간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복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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