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밥을 먹고 8시에 항구에 도착해 그리스 출국 수속을 하였다. 코 앞에 보이는 땅이 터키령이라 출국과 입국 수속을 해야만 한다. 두 나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2차 대전 때 까지도 총부리를 서로 겨누었다. 배는 어제 도착하면서 본 쾌속선으로 약 200명 정도 태울 수 있을 것 같다. 항해시간은 30분.
코스 섬을 떠난 배가 터키를 향해 힘차게 달린다. 배의 항적이 배의 크기에 비해 상당하다. 기차에서 끝 칸에서 멀어지는 철길을 바라보는 것이 좋고, 배에서도 항적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지만...
한동안 달리던 배가 속도를 늦추며 항구로 접근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항구라 작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크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많은 배가 항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세일보트들의 마스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뒷편 육지에 건물의 흔적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 유적이다.
마음은 그리스 유적으로 먼저 가고 싶었지만 배에서 내린 곳에서 가까운 방어 성채를 구경하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그리스 사람의 석상인 듯한 것들이 서 있다. 터키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많은 돈을 벌지만 그것들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1453년 이스탄불을 점령한 오스만 투르크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그들에게 고대 그리스 문명은 자신들이 정복한 무시해도 좋은 하등 문화인 듯 하다. 그리고 그를 보는 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성은 높은 곳에 망루가 있게 마련이라 입장한 후에는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 그러다 만난 작은 정원 공간. 꽃과 벤치가 있어 더위를 식혀갔다.
벤치 근처에는 목이 날아간 그리스 조각이 서 있다. 누가 만지든, 넘어뜨리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하다.
다시 길을 출발해 가파른 마지막 계단을 올라갔다. 유목민의 특징이라고는 하는데 터키 사람들은 대형국기를 걸어 두기 좋아한다. 이곳에도 여지없이 나부끼고 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을 우습게 알던 오스만 투르크의 자존심처럼 국기는 붉게 태양아래 휘날린다.
올다오다 본 터키 국기는 애들 장난감에 불과하다. 망루에 오니 어떻게 걸었는지 대형 빨래줄같은 것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국기를 걸어 놓았다. 세찬 바다바람은 그 큰 깃발을 힘차게 걷어차고 있었다.
망루 밖을 내다보니 에게해가 아름답고, 작은 보트가 항해를 마치고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항구 입구의 베네치아 성채 구경을 마치고 나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인 모솔리움 묘를 보러 갔다.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위한 불가사의한 규모의 묘지를 지었다는 전설 속의 묘지. 타지마할 보다 2천년을 앞선 감동적인 사랑의 서사시를 기대하며 유적지에 입장했지만 솔직히 실망하고 말았다.
제대로 서있는 것이라곤 없는 폐허. 박물관 안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완벽한 폐허였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두 가지를 이번 여행에서 보았다. 아니 보지는 못했고 그들이 있던 곳을 가 보았다. 흔적조차 찾기 힘든 그 현장의 모습은 당시에는 좀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두고두고 내가 고대 유적을 찾아다니게 된 시작점이 되었다.
그곳에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는 것이 중요할 수 있지만,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당시를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찾아 간다. 바다에서 볼 때는 지척인 것 같은데 뙤약볕 속에 오르는 언덕길은 다리를 무겁게 만들고 온 몸이 땀에 젖는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집들이 사라지고 앞에 유적이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항구와 아까 다녀 온 방어 성채가 뿌옇게 보인다.
오를 곳이 남아 있는 꼴을 못보는 나는 갈 수 없을 때까지 올라갔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곳에서 공연도 보고 민회를 열기도 하고, 개선식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모이는 이런 원형극장은 언제나 항구 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만치 커플이 계단을 다 오르더니 여자가 지친듯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는다.
원형극장을 떠나 항구로 향했다. 오늘 다시 그리스로 돌아가야 하므로...
이곳이 터키 땅이라고는 하지만 집의 색은 대동소이하다. 하얀 벽에 푸른 문, 그리고 붉은 꽃이 핀 초록의 식물이 아름답다.
이곳은 이슬람의 땅임을 선언하듯 이슬람 성전의 탑이 골목길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내려오다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과 포장된 도로 그리고 곳곳에 흉물스레 튀어나온 전기줄까지 로도스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5천년을 거슬러 올라갔던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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