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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니 고생, 죽자니 청춘

파시스트 와 파시즘 - 민주주의 선거의 맹점이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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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로부터 배운다. 사실 경험하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 부지기수이지만...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과거에 일어난 일로 부터 오늘 생길 수 있는 비극을 방지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민중의 의지를 구현하고 집단지성은 개인의 지성을 뛰어넘는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파시스트 독재가 발생하고 집권하는 과정을 보면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현대 인류사에 가장 악랄한 영향을 남긴 파시즘이 바로 의회민주주의가 잘 운영되고 있던 이태리와 독일에서 대중의 선택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파시즘 (fascism) 이태리에서 시작되었고 fascismo 불렸는데 이는 '묶음' 뜻하는 파쇼 (fascio)에서 파생되었다. 그리고 '파쇼' 로마제국에서 민회를 주재하는 정무관의 권위를 상징하는 '파스케스 (fasces)'에서 유래하였다. 나무 묶음과 도끼 그리고 사자의 머리로 구성된 파스케스 도안은 파시즘의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서방세계는 사회불안을 겪으면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급속히 확산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패전국인 독일은 물론 승전국으로서의 이권을 챙기지 못한 이태리에서도 사회 불안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전후 10년이 안되어 유럽 20여 개 나라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일어났다.

파시즘의 시조인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는 사회복귀에 실패하고 불만에 가득 찬  귀향 군인들을 모아 '전투단 (fascio di combattimento)'을 결성하고 파시즘 대중운동에 이용하였다. 이태리인들은 검은 셔츠를 입고 가두행진을 하는 파시스트들을 보며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이 재현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고 무솔리니는 정치적 입지를 다져 출범 2년 만에 국회에서 35석의 의석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서방세계는 사회불안을 겪으면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급속히 확산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패전국인 독일은 물론 승전국으로서의 이권을 챙기지 못한 이태리에서도 사회 불안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전후 10년이 안되어 유럽 20여 개 나라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일어났다.

파시즘의 시조인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는 사회복귀에 실패하고 불만에 가득 찬  귀향 군인들을 모아 '전투단 (fascio di combattimento)'을 결성하고 파시즘 대중운동에 이용하였다. 이태리인들은 검은 셔츠를 입고 가두행진을 하는 파시스트들을 보며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이 재현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고 무솔리니는 정치적 입지를 다져 출범 2년 만인 1921년에 국회에서 35석의 의석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10월에는 파시스트 민병대를 로마로 행진시켜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당시 국왕은 무솔리니를 수상에 임명하였다.

독일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는데 다만 히틀러의 독일 파시즘은 이태리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극단적인 면모를 보였다. 1차 세계대전 패배로 승전을 도둑맞았다는 상실감에 차 있던 독일 국민들은 베르사유 조약에서 강제하는 전쟁배상금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1923년에는 전쟁배상금 지급 지연을 빌미로 프랑스가 독일의 공업 중심인 루르 지방을 점령했고 독일인 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히틀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해 뮌헨에서 '비어홀 폭동'을 일으켜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히틀러는 수감되었다. 수그러들던 독일 파시즘은 1929년 대공황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1932년 선거에서 나치당은 무려 23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며 제1당이 된다. 나치당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파펜과 슐라이허의 음모가 한몫을 하긴 했어도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수상에 임명된다. 

'히틀러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쓴 선거 포스터

일반적으로 독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집단이 행하는 것으로 믿고 있지만 대표적인 파시즘은 민중이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만큼 민중은 악의적이고 집요한 선전선동에 의해 조작되기가 의외로 쉽다. 파시스트 정당은 집권한 후 공산주의 절멸이나 유대인 말살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독재권력으로 발전해 나갔고 종국에는 3천만 명 이상의 인명이 살상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켰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책을 택한다는 일반적인 선택 기준이 선거판에서 회자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이 내세운 대권주자들의 면모를 보면 상황은 달라져 보인다. 

지금은 최악을 택해서는 안되므로 차악을 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에서부터 시작된 '상대 후보 나쁜 놈 만들기'는 끝간 곳을 모르고 있다.

기발하고 집요한 선전선동은 파시스트들의 가장 큰 무기다. 독일 국민은 나치의 선전선동에 양심과 상식이 마비되어 이웃이던 유대인이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가스실에서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데도 거부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또한 지속적이고 악랄한 선전선동에 이미 상당 부분 좌경화가 이루어져 있다. 이미 모든 것은 글러 버렸는지 도 모른다. 국민들은 포퓰리즘 정책에 중독된 지 오래고 누구도 감히 허리띠를 졸라 매야한다는 소리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보수정당 조차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 내며 선거에 이기기 위해 악수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의 정치 시스템은 국민의 의식 수준이 결정하는 듯 보인다. 과연 혼란스러운 대선판에서 대한민국은 기사회생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매우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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