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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니 고생, 죽자니 청춘

경제위기 -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되었던 "영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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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에 무척이나 많이 듣던 말이 "영끌"이다. "영혼까지 끌어다" 돈을 빌린다는 또는 투자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그 "영끌"족 들이 증권시장에서 혼 줄이 나고 있는 모양이다. 금리가 오르니 거의 공짜로 빌린 돈이 자꾸 이자를 달라고 한다. 

그런데 멀리 미국에서도 이런 "영끌"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 역사가 있다. 

때는 1929년 10월 15일, 세계적인 경제학자 Irving Fisher 교수는 "주식은 곧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한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통령 조차도 번영기의 최고 기록을 달성한다고 낙관론을 펼쳤다. 그리고 이러한 낙관론은 그때까지 주식 투자를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욕심이 목까지 들어찬 아마추어들은 레버리지 투자까지 감행함으로써 위험천만한 레버리지 투자를 위해 얻어쓴 증권대출이 급증했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중에서

위 도표에서 보면 갈색과 파란색 부분은 변화가 심하지 않고 증권대출을 의미하는 기타금융기관 대출이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1928년 2월 3.5%에서 1929년 8월에 6%까지... 

금리인상은 주식시장 하락을 불러왔고 레버리지 투자를 한 아마추어들은 증권대출을 갚을 수 없었다. 결국 돈을 빌려주었던 기타금융기관들이 파산하고 붕괴가 촉발되었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대공황을 유발한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이다. 1년 반 동안 2.5%에 불과한...

지금은 어떤가? 

2022년 1월에 0.25%였던 것이 9개월 만인 22년 9월에 3.25%가 되었다. 9개월만에 3%를 올린 것이다. 29년의 금리 인상과 비교하면 두배가 넘는 빠른 속도였다. 

과연 대공황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올린 금리가 영끌 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위기탈출이 가능할 지 대공황보다도 무서운 대혼란으로 치달을 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다만 what goes up, must come down임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대공황 직전까지 지수는 68에서 380까지 올랐고 1929년 10월 28일 폭락한 후 2년 반에 걸쳐 44까지 떨어졌다. 90% 가까운 추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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