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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샹그릴라! 그리스!/신화와 역사

[그리스여행 정보] 그리스 민주주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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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인류문명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특히 아테네 인들이 누렸던 민주주의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세계 정상급이다.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Peisistratus 페이시스트라토스(BC546 - 527/8)는 어느 마을에서 엄청난 키의 처녀를 하나 데리고 아테네에 나타나 그 여자가 바로 아테나 여신이라며 여신을 모시는 자신이 아테네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돌 맞아 죽을 얘기지만 그의 변설이 어찌나 좋았는지 아테네 시민들은 그에게 통치를 맡겼고, 다행히 그는 세금을 낮추고, 공짜 대출을 해주어 시민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도시를 발전시켜 작은 마을에서 그리스 무역의 중심 도시로 변모시켰다. 당시 그리스 대부분의 도시국가는 귀족들이 다스리는 aristocracy였는데 아테네만 한명의 독재자가 다스리는 참주정치 Tyranny로 변모했고 페이시스트라투스가 죽자 그의 아들인 히피아스 Hippias가 통치권을 물려 받았다. 

히피아스는 집권초기, 아버지의 선정을 본 받아 아테네를 잘 다스렸으나 기원전 514년 동생 히파르코스가 암살당한 뒤 폭군으로 변해 시민들을 억압하고 처형했다. 




Cleisthenes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 명문가 출신으로 페이시스트로토스의 참주정을 반대해 추방당했다가 히피아스의 폭정에 반대하는 아테네 시민혁명에 가담해, 기원전 510년 히피아스를 몰아내고 권력을 쟁취했다. 하지만 권력을 누릴 사이도 없이 스파르타와 결탁한 아테네 귀족 이사고라스 Isagoras에 의해 축출당한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내에 거의 유일한 왕정 도시국가였고 시민의 자유가 억압된 군국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사고라스와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장악하자 시민의 자유를 빼앗았고, 아테네 시민은 이에 항거해 기원전 508년 다시 반란을 일으켜 이사고라스를 몰아내고 클레이스테네스를 불러들였다.

그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돌산을 깍아 회의장을 만들고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투표에 의해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회의는 9일 마다 열렸다고 한다. 그는 또한 공직자를 혈연으로 뽑던 전통을 타파하고 일반 시민을 추첨으로 뽑아 기득권층의 권력 집중을 막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는 또한 도편추방제 ostracism을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즘의 국민투표에서 6천명 이상에게 투표를 받으면 누구라도 10년간 도시에서 추방되는 이 제도는 부작용도 많이 낳았지만 독재자를 제거하는 강력한 민주주의 수호 도구 역할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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