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세번째 행선지 에피다우로스를 가기 위해서는 코린트에서 남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반도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모양새가 된다. 코린트 근방에서 훌륭한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왕복 2차선 국도로 한시간 남짓 걸리는데, 산길이 제법 험하다. 종종 180도 턴을 한다.
도로표지판 보랴, 네비게이션 보랴, 산아래 해안선 비경 보랴, 수동 미션 제어하랴, 여행자는 지루할 사이가 없다. 다행히 코린트에서 멀어지며 교통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한적한 오솔길을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산길이 아름답다.
잘 보존된 유적은 어쩐지 실망스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피다우로스 페스티발이 열리는 원형극장 치고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신 에피다우로스 란다. 바닷가에 있는 신도시에 고대의 작은 원형극장이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은 ‘파라이아 에피다우로스’이다. 고대 에피다우로스는 이곳에서 약 15킬로 떨어진 산 속에 있다.
극장 주변으로는 올리브 농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농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오솔길이 끝나고 옥빛 에게해가 펼쳐진다. 마을 항구로 이어지는 비치엔 십여명이 해수욕을 즐기고, 그 뒤편으로 작은 고기배와 요트가 정박한 평화로운 풍경이다.
나그네는 이곳에서 행복한 미아가 될 수 있다. 길을 잃는 것이 여행의 재미 중 하나임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잠시 에게해의 평화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너무나 아름다운, 조용한 바다 풍경은 발이 떨어지지 않게 만든다. 차를 대고 잠시 쉬어가기 참 좋다.
이스트미아에서나, 이곳에서나 의지만 있으면 모든 해변이 해수욕장이 된다. 가게에서 10유로면 사는 비치타올을 사서 해변에 펼치면 자유로울 모든 준비는 끝난다. 바다 색은 바닥의 조건에 따라 에메랄드 빛이나 코발트 빛이다. 안이 훤히 보이는 바다 속에는 어린이 주먹 크기의 성게까지 제법 많다.
한가한 바닷가의 시간. 자유로움에서 얻는 충만한 행복감은 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 강박을 날려버린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에피다우로스 페스티발에서 공연은 저녁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도 있다.
작은 만을 천천히 걸어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까지 수영복 차림으로 걸어도 눈길하나 받지 않을만큼 자연스럽다.
가는 길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은 가난한 어촌과는 거리가 있는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주인장의 호의까지 겹쳐 푸짐한 음식으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천사같은 여자 아이가 까치발로 모래밭은 걸어가는 천국같은 곳에서 몇시간을 더 보내고 공용 샤워로 몸을 닦고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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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을 떠나 산 속으로 거의 20분을 올라가면 평지로 바뀌고 주변엔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에 도착한다. 고대 그리스 최고의 종합병원이자 건강관리 도시, 에피다우로스는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고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번창하였다. 아폴로의 아들인 그는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의사였다고 한다.
발굴된 유적의 조감도를 보면 환자를 위한 병원시설은 물론이고 가족을 위한 호텔과 극장, 경기장까지 있어서 요즘의 종합 리조트를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이스트미아 경기 9일 후에는 이곳에서 축제를 열었고, 명예만 있는 다른 곳과 달리우승상금을 지급했다.
이제 병원은 운영되지 않고 다만 완벽하게 보존된, 14000명을 수용하는, 고대 극장을 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여름에는 에피다우로스 축제가 열려, 고대 극장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감상할 수 있다.
6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의 유적은 사각의 옛 형태를 보이는 주춧돌만 남아있어 고대 극장이 더욱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호텔의 주춧돌이 있던 곳에 신을 벗고 맨발로 솔 잎이 떨어져 덮힌 유적을 걸어보았다. 멀리 이곳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산들이 오후의 햇살 속에 있다.
극장으로 가는 길 중간중간에는 두께 30센티미터 정도의 테이블 모양 석재가 많이 놓여 있다. 돌을 자르기 위해 정을 박은 자국이 뚜렷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멀리 아테네에서 부터 온 사람들이 공연을 보려고 인파를 이룬다.
극장에 앉아 먼 하늘을 보면 아테네로 향하는 항공기의 항적이 검은 파란색의 하늘에 흰 띠를 남기고, 샛별이 키프러스 나무 위에서 반짝인다. 초승달이 샛별을 지나 하늘에 나즈막히 걸리면 극장 안은 이천 수백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고대 그리스로 이동한다. 이윽고 여신 아테나의 음성이 극장 구석구석까지 또렷이 울려 퍼진다. 소포클레스의 아약스 공연의 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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