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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샹그릴라! 그리스!/그리스여행기

[두번째 그리스여행]12 아르고스: 8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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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부터 그리스 사람들은 페니키아와 이집트에서 문명이 전달되었다고 믿었다. 그리스엔 ‘펠라스고이’들이 살고 있었고, 이집트의 왕자 이나커스 Inachus가 처음으로 그리스에 상륙했다. 그는 아르고스를 세우고 펠라스고이에게 고기를 요리하는 법과 돌을 쌓아 건물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최소한 기원전 2000년 정도에 있었던 일이니 문자기록은 물론 없다. 이나커스가 세운 도시는 지진으로 사라지고, 한참 후 이집트인 다나오스가 다시 같은 자리에 도시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도리아 인의 침입과 때를 같이 한 헤라클레스의 후손들 시대에 아르고스는 그리스 최강의 도시로 군림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가 쳐들어 왔을땐 그리스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협조, 연합군을 형성했지만 아르고스 만큼은 독자노선을 걸어 빈축을 샀다. 이유는 지독한 스파르타에 대한 미움때문이었지만 ,그 후 그리스에서 외톨이 신세가 되었고 쇠퇴하여 지금은 작은 마을이 되었다.

지리적으로 스파르타와 가까워 자주 갈등을 겪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는 아테네 편에서 싸웠다. 스파르타와의 전투 중 가장 큰 것은 우연히도 만티네아에서 벌어졌는데, 두번 싸워 1승 1패를 기록했다.  

신화에서도 아르고스는 자주 등장하는데,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개 과업을 시킨 사람이 바로 아르고스의 왕 에우리테우스였다. 12번이나 헤라클레스에게 골탕을 먹이고 나니 은근히 보복이 두려워진 왕은 헤라클레스가 돌아온다는 소리를 듣고 항아리 속에 숨었다는 일화가 항아리에 그림으로 전해온다. 

메두사를 죽이고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친 영웅 페르세우스의 고향도 아르고스이다. 

그리스 고대 역사에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이 돌아온다는 사건이 있다. 대략 기원전 12세기의 일인데 이때 발칸 반도에서 다른 민족이 유입되는 사건을 표현한 전설이라도 여겨진다. 이때 들어온 민족이름은 도리아 인이다. 이들은 나우팍토스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파트라스에 상륙했다고 한다. 그들은 세 도시를 세우거나 점령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체 펠로폰네소스를 차지한다. 그 세 도시는 스파르타, 메세네, 그리고 아르고스 였다. 그렇게 역사에 등장하는 이 도시는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그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6천년 전인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살던 흔적을 발견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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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계속 살아 왔다는 것은 유적이 남아 있기 힘들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중앙광장에는 오늘도 한쪽에서 땅을 파고 뭔가 짓고 있었다. 바다에서 몇 킬로미터 내륙이기 때문인지 태양은 더 견디기 힘들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양갈비 구이인 램찹과 그리크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낮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려 산책에 나설 수 있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중앙광장에서 북서쪽으로 대로를 따라 가면 오른편으로 원형극장 유적이 비로소 나타난다. 지금까지 보아 온 유적처럼 초원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3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침 예쁜 초승달이 뜨고 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원형극장은 그리스 내에서도 유명한데 돌을 쌓아 좌석을 만드는 다를 곳들과 달리 이곳은 원래 있던 암반을 깍아 만들었다고 한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원형극장 뒤로는 산이고 그 정상에 방어 성채가 조명을 받고 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낮에 보니 산 정상의 방어성채는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가까이 볼 수록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생각이 든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고고학 박물관 근처에는 넓은 광장 만한 땅에 규칙적으로 구획이 쳐진 낮은 돌담이 있었다. 병영이라는 것 같았지만 언제 지어진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보존을 하는 건지 아닌지 조차 분명치 않았다. 그저 도로 옆에 깨끗이 정리된 모습이었다. 마치 곧 집을 지으려고 기초를 해 놓은 모습과 비슷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보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곳은 이런 모양으로 쉽게 변한다. 백년도 되지 않은 집터가 주위와 어우러져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고대인들의 축조 기술을 잘 보여주는 돌담. 규격이라고는 없는 각양각색의 돌들을 깍아 빈틈없이 쌓아 올렸다. 마야 문명은 돌들을 대충놓고 빈 틈을 작은 돌로 메워 기둥을 만든 모습을 보았는데 차이가 확연하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산은 북쪽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남쪽은 바다로 이어지므로 평야지대다. 산 중턱에 있는 유적을 찾아 나서면 곳곳에 안내판이 있고 포장된 산책로에는 조명까지 설치되어 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만든 님프의 샘 Nymphaeum를 볼 수 있다. 두개의 물 탱크를 가지고 있었던 명물이었다는데 지금은 외벽의 흔적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아폴로와 아테나의 신전은 도시를 내려다 보는 언덕위의 돌무더기로 변한지 오래고 흔한 철조망 조차 없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서쪽 방향으로 십여분 걸으면 간 밤에 보았던 원형극장이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좌석의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원래 있던 커다란 돌을 깍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원형극장 앞에는 번잡한 차도가 있고 그 건너편으로 고대 도시 유적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꺽고 그리스 최강을 재확인 했던 스파르타를 꺽고 그리스 최고의 도시국가가 되었던 아르고스. 8천년 동안 이 땅을 살다가 간 사람들의 흔적과 함께 고대의 화려한 도시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그리스

하수도 시설까지 완비된 도시의 옛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유적이 아르고스에 있다. 화려했던 과거와는 동떨어진 모습의 아르고스는 자신이 누군지를 잊어버린 노인처럼 조금은 무기력하게 조용히 오늘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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