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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비엔나에서의 떠돌이 시절에 터득한 권력자들과 연합해야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지론에 따라 행동했고 1933년에 이르러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군대와 보수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수상에 지명한 것이다. 이로써 히틀러의 정치권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힌덴부르그 대통령과 히틀러




따라서 히틀러의 당면 과제는 자신과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그룹을 조속히 제거하고 자신의 나치당을 유일한 권력기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권위적인 정부와 경찰력을 동원해 나치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었다. 히틀러는 수상취임 24시간도 되지않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6개월이 채 되지않아 전 독일을 나치 천국으로 만들고, 자신은 나치제국 또는 제3제국의 독재자가 되었다.

제국의회제국의회

첫번째 내각 회의는 수상 취임 선서를 한지 불과 다섯시간만인 1933년 1월 30일 오후 5시에 소집되었다. 의제는 제국의회 Reichstag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방안이었다. 히틀러의 수상직은 내각제 시스템의 수상이었기 때문에 제국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했다. 히틀러 내각은 나치당과 민족주의당의 연합이었는데 전체 583석 중 247석만 확보하고 있어 가톨릭 중앙당을 끌어들여 그들이 보유하던 70석을 확보해야 했다. 히틀러는 수상이 되자마자 괴링을 시켜 가톨릭 중앙당 수뇌부의 의중을 파악하도록 했다. 괴링은 내각회의에서 가톨릭 중앙당이 모종의 보상을 바라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서 괴링은 제국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을 제안했고 히틀러도 동의했다. 하지만 민족주의당의 대표격이며 내각의 일원이던 후겐베르그 Hugenberg는 가톨릭 중앙당을 정부에 참여시키는 것과 선거를 새로 치르는 것에 반대했다. 대신 후겐베르그는 당시 100석을 차지하던 공산당을 불법화하여 그들의 의석을 없앨것을 제안했다. 100석이 줄어들면 연립내각은 자연스레 과반을 확보하게 된다는 논리였다. 평생 공산당을 혐오하고 후일 독일에서 공산당을 박멸하는 히틀레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특유의 권력본능을 발휘해 이 제안을 거절한다. 시기상조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히틀러는 이튿날 아침 가톨릭 중앙당 지도부와 회담을 갖고 타결점을 찾되 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선거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의결한다. 괴벨스는 1월 31일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총통과의 회의에서 우리는 공산당의 테러에 대응할 노선을 정했다. 우리는 당분간 공산당에 직접 공격을 자제하기로 하였다. 그보다 먼저 볼세비키의 혁명 시도를 저지하여야 한다. 공격은 그 후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날 히틀러는 가톨릭 중앙당의 카스 Kaas 당수에게 자신에게 할 일련의 질문을 제시하도록 부탁했다. 카스가 준비한 질문들은 기본적으로 히틀러가 정국을 운영함에 있어 헌법을 수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던 히틀러의 연립정권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질문에 대해 히틀러는 도저히 타결될 수 없었다고 내각에 보고하고 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한다. 히틀러는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후겐베르그의 민족주의당과 가톨릭 중앙당을 모두 속여 자신의 뜻대로 제국의회를 해산할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히틀러와 파펜히틀러와 파펜

민족주의당의 후겐베르그와 전임 총리 파펜 Papen은 강력히 반발했으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지금의 내각구성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약속을 받고 1933년 3월 5일 총선을 하기로 합의했다. 히틀러의 내각에는 총 12석 중, 나치당이 3석을 차지하고 민족주의당이 9석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민족주의당은 만족할 만한 제안이었다. 물론 결과는 그들에게 재앙이 되었지만...

선거에 앞서 괴벨스는 자신의 2월 3일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쉬울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와 신문은 우리의 수중에 있고, 우리는 선전전의 불후의 명작을 연출하기만 하면 된다. 또, 이번에는 돈이 부족할 일도 없을 것이다."

독일의 주요 기업가들은 히틀러 정부가 노동시장을 안정시키고 사업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환영하였다. 1933년 2월 20일, 재계 유력자인 샤흐트 Schacht 박사는 재계 실력자들이 모인 자리에 히틀러와 괴링을 초대하였다. 그 자리에서 히틀러는 연설을 통해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박멸할 것이며 1차 대전 이후 금지된 군대를 다시 복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재무장은 그 자리에 참석한 여러 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약속이었다. 히틀러는 또 "우리는 최후의 선거를 목적에 두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퇴는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아울러 선거에 진다면 "다른 수단에 의지하여,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모인 경제인들은 히틀러의 연설에 열광했다. 1933년 1월 29일 힌덴부르그 대통령을 만나 히틀러를 수상에 임명해선 안된다고 했던 크룹 Krupp조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히틀러에게 재계의 감사를 전했다. 모임을 주선한 샤흐트 박사는 즉석에서 모금을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3백만 마르크를 모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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