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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Digest

[화폐전쟁4]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파운드 vs 미국 달러 전쟁 (2): 준비통화 바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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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파운드화를 금 부족현상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고안한 화폐본위제는 "물을 기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기극처럼 황당한 화폐이론이었다. 금환본위제라는 사상 초유의 제도를 만든 잉글랜드은행 총재 노먼은 미국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금 보유량이 영국의 다섯 배에 달하는데다 오래전부터 영국의 금융 패권 지위를 호시탐탐 노려왔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공격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배상금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에 125억 달러의 전쟁배상금을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산업기반이 붕괴된 독일이 그 지불을 계속 미루고 있어 갈등이 심화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전쟁배상금을 받아 미국에 진 빚을 갚겠다고 선언했으므로 결국 영국과 프랑스에 돈을 빌려준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1923년 11월 미국은 은행가 찰스 도스 Charles Dawes를 '배상문제전문가위원회'의 미국대표로 유럽에 파견했다. 여러차례의 회의를 거치면서 찰스 도스는 전쟁배상금을 무조건 독일에 강요할 것이 아니라 독일의 경제사정과 지불능력에 맞추어 회수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연합국들은 도스의 방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프랑스가 반대의 선봉에 섰다. 그럴만도 한 것이 1871년 5월 끝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전국 프로이센 (독일)은 50억 프랑의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프랑스로 부터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미국은 프랑스의 반대를 꺽기 위해 프랑스 프랑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1924년 1월 달러 대비 프랑의 환율은 1 대 20이었다. 미국의 공격으로 프랑은 폭락하여 3월 8일에는 1 대 27로 하락했다. 프랑의 폭락이 계속 진행될 것을 우려한 프랑스 정부는 결국 3월 13일 미국에 1억 달러를 빌려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프랑스가 찰스 도스의 방안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대출을 해 주었고 프랑의 환율은 1 대 29에서 1 대 18로 급반등하였다.

찰스 도스의 방안은 '배상문제전문가위원회'에서 파견한 전문위원이 독일의 전쟁배상금 지불을 관리하도록 했다. 전문위원은 미국 차지가 되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중립적일 수 없는 채권국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문위원으로써 독일에 관대했다. 독일이 첫 해에 갚아야 하는 2억 5천만 달러 중 2억 달러를 융자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중 일부를 독일 중앙은행의 준비통화에 편입시키는 것도 승인했다. 

영국으로선 눈 앞에서 가방을 도둑 맞은 것과 같았다. 

불과 1년 전 독일의 사흐트에게 2천5백만 달러를 빌려 주며 영국 파운드를 독일의 준비통화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허사가 된 것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오가는 돈이 달러 베이스가 되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국제 거래에서 사용되는 통화가 바로 기축통화가 된다는 점에서 미국은 영국에 한 방을 제대로 날린 것이었다. 사기꾼들 영화 스팅의 한 장면 같은...

하지만 영국도 그대로 물러날 가벼운 상대는 아니었다는 것이 곧 증명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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