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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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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인물 열전] 마라톤 전투 영웅 밀티아데스 아테네를 빛낸 사람 중에 밀티아데스 Miltiades라는 사람이 있다.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 제국이 아테네를 침략했을때 뛰어난 작전으로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유력한 귀족 집안 출신인 밀티아데스는 아테네가 참주들에 의해 다스려지던 기원전 550년에 올림픽 전차 경주 챔피언인 키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즈음은 아테네에 민주정이 붕괴되고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라는 이름의 독재자로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올림픽 전차 경주에서 세번이나 우승을 해 시민들 사이에 인기가 매우 높았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참주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이 그의 인기를 시샘해 살해했다고 한다. 아테네 민주정을 파괴하고 독재자가 된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가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대를 이..
마틴의 고대 그리스의 역사 다이제스트 1 - 미노아 와 미케네 문명 기원전 2천년대 후반 미케네 인이 그리스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그리스 땅의 주민미케네 문명에 앞선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미노아 문명은 '교차문화적' 전통을 미케네에 물려주고 기원전 2천년대 중반 (기원전 1500년 경을 의미. 기원 후 천년 중반이 1500년 경이므로)에 멸망하였다. 미케네는 기원전 1200-1800년 사이에 지중해 지역의 광범위한 혼란으로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B.C. 4500 - 2000 년경 인도-유럽 인의 유럽 이동 3000 - 2000 년경 지중해 다문화 발달 (단일 농업체계에서 곡식뿐 아니라 올리브, 포도를 동시 경작하는 것) 3000 - 2500 년경 발칸과 크레타에서 청동 야금술 개발 2200 년경 크레타에 최초의 미노아 왕궁 건설 1700 년..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살라미스 해전 자신들의 고향을 유린당한 아테네 인들의 슬픔과 분노는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행동때문에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퇴각 결정.스파르타를 포함한 펠로폰네소스의 그리스 도시국가가 내린 결정을 보고 테미스토클레스는 위험한 모험을 하기로 한다.시키누스 Sicinnus는 페르시아 출신으로 전쟁포로가 되어 테미스토클레스의 노예가 되었다. 아마도 상당한 지식인이었던듯 테미스토클레스는 시키누스를 자기 자식들의 가정교사로 삼았다. 그런 은혜를 입었으니 시키누스의 충성심은 각별할수 밖에 없었다.테미스토클레스는 시키누스에게 편지 한 통을 주어 크세르크세스에게 전하도록 한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뜻에 동조하는 아테네 장수 테미스토클레스가 기밀 정보를 보고합니다. 아테네의 해군은 내분이 일어나 군기가 형편없으며 곧 퇴각할 ..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아테네 점령 크세르크세스의 육군이 테르모필라에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이니다스가 이끄는 300명 결사대에게 혼줄이 나고 있는 동안바다에서 페르시아 해군도 테르마 (지금의 테살로니키)에서 출항하여 항해하던 중 태풍을 만나 3일 만에 400여척의 전함을 포함한 수많은 선박이 침몰하는 피해를 입었다. 페르시아 해군의 피해 소식에 고무된 그리스 해군은 아르테미시움Artemisium에서 해전을 펼친다.막대한 피해를 입기는 했어도 페르시아 해군은 그리스 해군보다 훨씬 많은 전함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리스 해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피해만 커질뿐 승부가 나지 않았다.그러던 중 테르모필라에가 크세르크세스 손에 떨어졌다는 정보가 전해졌고 전의를 잃은 그리스 해군은 즉시 수니온 곶을 지나 살라미스 섬까지 후퇴하였다. 사태가 이쯤되자 아테네A..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스파르타 테르모필라에 전투 300명의 스파르타 군대를 끌고 레오니다스는 테르모필라에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다른 도시들에서 온 병력 약 7000명과 합류하였다. 가소로운 숫자의 그리스 연합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한 크세르크세스 왕은 사신을 보내 레오니다스에게 그리스 군의 모든 무기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다. "모론 라베!"사신의 말을 들은 레오니다스가 했다는 말이다. 우리 말로는 "와서 가져가라!"는 뜻이다. 작은 도시 스파르타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티셔츠에도 적혀 있는 스파르타 정신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상남자의 멘트.또 다른 일화. 스파르타 군사 한 명이 레오니다스에게 적의 군세를 설명하며 "그들이 화살을 쏘면 하늘을 뒤덮어 어두워 질 정도라고 합니다."라고 하자 했다는 레오니다스의 말. "잘 됐네. 그늘에서 싸울 수 있겠구..
[그리스여행 정보] 페르시아의 2차 그리스 침공: 크세르크세스 진군 마라톤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귀국하자 곧 바로 복수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복수를시작하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아들 크세르크세스 Xerxes가 왕위를 계승한다. 영화 '300'에서 이상한 차림을 한 왕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이 사람. 크세르크세스 왕은 기원전 480년 사르디스를 출발 대군을 이끌고 육로로 진격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헬레스폰트해협을 부교를 건설해 통과한 그는 트라케 Thrace 지방으로 진군하며 계속 병력을 보강했는데 전사만 육군과 해군을 합쳐264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원 인력까지 포함하면 최소 528만명이 이동했다고 한다. 고대 기록이 10배로 뻥튀기 되었 다 해도 26만의 병력을 동원한 것 조차 당시로는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크세르크세스의 침..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1차 그리스 침공: 마라톤 전투 아시아 최강의 제국 페르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아테네. 바람 앞에 선 촛불이 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었으므로 싸움은 해보나 마나한 것 처럼 보였다.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군대가 수백척의 전함을 타고 트라케 해안을 따라 아테네를 향해 항해하여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다.이들의 길잡이는 한 때 아테네의 참주였던 히피아스. 참주는 현대의 독재자에 해당하는데 히피아스는 폭정을 휘두르다 아테네에서 쫒겨났다. 그런 그가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보복을 위해 페르시아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백만대군이란 말이 있지만 현대 전술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페르시아 육군은 10만 명이었다고 한다.이에 비해 아테네는 주변 지역을 탈탈 털다시피해서 모은 9천명이 전부였다.마라톤 평야는 아테네에서 불과..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의 배경 지금 터키 땅인 소아시아의 해안선에는 수많은 그리스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그들은 내륙의 뤼디아 왕국 Lydian Kingdom과 맞닿아 있었으며 기원전 560년 즉위한 크로에소스 Croesus에 의해 정복당한다 뤼디아는 당시 최대 세력인 메데스 왕국 (아래 사진 속 연두색 지역)과 인접하였고 두 왕국은 평화롭게 공존했다 연두색: 메데스 왕국 판도메데스 왕국은 산악지역에 거주하던 페르시아 인들에게 정복당한다. 페르시아의 퀴루스 Cyrus왕은 기원전 559년 메데스 왕국을 정복하고 이어서 뤼디아 왕국까지 정복한다. (기원전 546년) 그리고 소아시아 해안과 도서지방의 그리스 식민 지를 모두 정복한다. 사모스 섬을 제외하고... 사모스에는 참주 폴뤼크라테스Polycrates가 지배하였는데 수백척의 전함을 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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