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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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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로싸] 제2차세계대전 독소전쟁 - 배경 2차 대전 개전 후 독일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격파한 것은 불가사의하기 까지 하다. 아래 표에 양국의 군사력을 보면 더욱 독일의 승리가 믿기지 않는다. 독일 프랑스 병력 250만 500만 전차 2400대 3500대 야포 7500문 10200문 차량 120000대 300000대 전투기 1200대 1100대 폭격기 1700대 1000대 한마디로 공군력은 독일이 앞서있었지만 육군은 압도적으로 프랑스의 우위였다. 그런데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채 마지노 선 만 믿다가 프랑스는 패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독일은 프랑스 점령 후 영국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바다 너머의 영국을 점령하는 것은 히틀러의 생각처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영국은 미국과 소련이 참전하여 독일을 압박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버..
파시스트 와 파시즘 - 민주주의 선거의 맹점이 낳은 비극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로부터 배운다. 사실 경험하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 부지기수이지만...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과거에 일어난 일로 부터 오늘 생길 수 있는 비극을 방지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민중의 의지를 구현하고 집단지성은 개인의 지성을 뛰어넘는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파시스트 독재가 발생하고 집권하는 과정을 보면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현대 인류사에 가장 악랄한 영향을 남긴 파시즘이 바로 의회민주주의가 잘 운영되고 있던 이태리와 독일에서 대중의 선택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파시즘 (fascism)은 이태리에서 시작되었고 fascismo라 불렸는데 이는 '묶음'을 뜻하는 파쇼 (fascio)에서 파생되었다. 그리고 '파쇼'는 로마제..
[독재의 역사]2. 나치스와 히틀러 교육제도 개혁의 음모 히틀러는 1933년 11월 6일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반대자가 '나는 네 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조용히 말할 것이다. '너의 자식은 이미 우리 편에 있다. ...... 너는 무엇이냐? 너는 이제 머지않아 과거의 존재가 된다. 그러나 너의 자식은 지금 새로운 진영에 서 있다. 이제 곧 그들은 이 새로운 공동체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다'라고..." 교육체계를 장악한 히틀러의 섬뜩한 말이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마저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작금의 3,40대가 보여주고 있는 역사관 때문이다. 이해찬과 전교조 등이 수십년 전부터 갉어먹은 우리 아이들의 정신은 이미 세대간 메울 수 없는 간극으로 드러나고 있다.
[독재의 역사]1. 떠돌이에서 수상이 된 히틀러: 발톱을 감추고... 히틀러는 비엔나에서의 떠돌이 시절에 터득한 권력자들과 연합해야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지론에 따라 행동했고 1933년에 이르러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군대와 보수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수상에 지명한 것이다. 이로써 히틀러의 정치권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히틀러의 당면 과제는 자신과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그룹을 조속히 제거하고 자신의 나치당을 유일한 권력기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권위적인 정부와 경찰력을 동원해 나치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었다. 히틀러는 수상취임 24시간도 되지않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6개월이 채 되지않아 전 독일을 나치 천국으로 만들고, 자신은 나치제국 또는 제3제국의 독재자가 되었..
[모던타임스 digest]3장 히틀러를 기다리며 2/2 베르사유 조약은 겁을 먹은 유대인들의 거대한 물결이 러시아와 폴란드 등지에서 독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반유대주의는 히드라의 머리처럼 잘라내도 다시 생겨났으며, 논리나 증명에 개의치 않았다. 1918년 독일의 패전은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국민 사이에 끼여있는 이방인 배신자는 희생양으로 적합했다. 게다가 종전 후 몰려든 유대인의 물결은 민족의 순수성을 한층 더 희석시켰다. 레닌의 적색테러는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들에게 거저 받은 선물이었다. 뮌헨은 이제 독일 반유대주의 수도가 되었다. 히틀러는 국가 사회당의 투쟁을 방어적 대응과 선제공격으로 표현했다. 유대인들은 죄 없는 희생자가 아니라 실제적인 혹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써 사냥을 당했다. 독일에서 국가는 보모인 동시에 특무 상사였다. 조합주의 국가로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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