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는 오르코메노스가 두군데 있는데, 하나는 아테네 북쪽의 보이오티아 지방에, 나머지 하나는 펠로폰네소스의 아르카디아 지방에 있다. 네메아 서쪽 첩첩 산 중, 산 꼭대기에…
이곳은 기원전 420년경 아르고스에 점령당한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자신들의 영토라 생각하던 오르코메노스를 동맹이지만 경쟁자이기도 한 아르고스가 점령하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어린 왕 아기스가 연합군에 참가한 나라와 상의도 없이 아테네와 휴전을 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된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왕에게 10000드라크마의 벌금을 물리고 왕의 집을 부숴버렸다. 10드라크마가 황소 한마리 값이니 황소 천마리, 지금 돈으로 50억의 벌금을 왕에게 매긴 것도 대단하지만 집까지 부순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시민들의 뜻을 파악한 왕 아기스가 곧바로 아테네와 대규모 전투를 벌여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이다.
역사
기원전 7-6세기에 테게아와 만티에아와 함께 아카디아의 강력한 도시이던 오르코메노스는 독자적인 화폐도 주조할 정도로 부강했다.
페르시아 전쟁 때에도 이 도시는 테르모필라에 전투에 120명, 플라테이아 전투에 600명의 병력을 보내 그리스 연합군에 참여했다.
이 도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주요 도로를 굽어 보는 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누가 봐도 전략적 요충이다. 남쪽의 스파르타가 아테네로 가기 위해서도 지나야 했던 길이던 것이다. 그 길은 지금도 맞은 편 산 아래를 지나간다.
이 도시에는 아리스토크라테스란 이름의 왕이 두 사람있었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인 두 사람 모두 민중의 돌팔매를 맞고 죽었다 (stoned to death). 할아버지는 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처녀 사제를 범한 죄로, 손자는 2차 메세니아 전쟁때 스파르타에 반기를 든 메세니아 인들을 배신한 죄로…
그 후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적
2세기 여행가 파우사니우스가 찾았을 때만 해도 나무로 만든 아르테미스 상이 서 있었다고 하는 이곳은 입장권 매표소 이외에 지붕 하나 없는 곳이 되었다.
산의 정상 부위에 만들어진 아크로폴리스는 코린트나 아테네의 그것보다는 규모가 작다. 평지가 별로 없는 지형이라 땅의 모양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건축울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고대 극장역시 관중석은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좌석을 배치했는데, 거기서 연극을 보고 있으면 평야의 도로 감시가 저절로 되게 생겼다.
그리스식 극장 터는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아르테미스와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었다던 곳엔 이제 주춧돌들만 수천년의 잠에서 깨어나 있을 뿐이다.
눈길을 돌려 경계석이 깔린 길을 따라가면, 산 뒤편의 평야지대가 나타나고, 그 너머 뒷편으로 병풍처럼 산이 둘러싼 경치가 장관이다.
저런 평야까지 딸린 도로의 병목이니까 당연히 번창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수천년 동안 저 평야는 수많은 전사의 피를 요구했던 곳이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다툼. 그래서 펠로폰네소스의 평야는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에 피가 흥건하다.
튼튼하게 도시를 지키던 성벽도 이제 무너져 돌 서너개 높이로 주저 앉았다.
정상 부근에도 높이 차이가 있어 계단이 종종 나타난다. 유적의 입구 부근은 성벽 보존 상태가 조금 나았다.
여행 스케치
인적 드문 유적을 떠나 산길을 내려가면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올라갈때는 보지 못했던 펠로폰네소스 지형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산을 마주하고 주차된 자동차는 킹콩 앞에 쪼그려 앉은 어린아이 같다.
제대로 된 나무하나 없는, 건조한 여름 모습.
오르코메노스 마을 보다는 남쪽으로 3-4킬로미터 떨어진 레비디라는 마을에서 하루를 묵기 편리하다.
교장선생님이었던 여주인이 운영하는 펜션은 어머니의 손길같이 잘 정돈되어 있을 뿐 아니라, 소박한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직장때문에 멀리 사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그리움은 세계 공통이란 생각이 든다.
맞바람이 드는 아파트는 평야를 건너 온 바람으로 가득해 마치 우리의 초가을 같다.
펜션에서 5분을 걸으면 마을 광장과 다양한 노천 식당이 손님을 맞이한다.
오르코메노스 마을은 100가구 남짓의 작은 마을인데 초입에 오래 된 전통 가옥이 눈길을 끈다. 한 여름인데 집 주변의 풀들 대부분은 거친 가시만 남겨 두고 말라버렸다.
자칫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지름길로 접어들면 낭패를 본다.
비포장 도로가 나타나도 평야지역이라 걱정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잡초가 사람 키만큼 자라 도로가 없어지다시피 한 구릉지대를 지나는 건 즐거운 경험은 아니다.
겨우 빠져 나와 우물가에 차를 댄다.
옆과 밑에서 쿵쾅거리며 지나온 흔적은 본네트에 남았다.
유적으로 향하는 길은 산비탈을 아슬아슬 돌아가고, 먼 산 꼭대기엔 아침 햇살이 퍼진다.
어느 정도 오른 후 내려다 보면 잡초가 우거진 구릉은 그저 아무런 장애가 될 것 같지 않게 보인다.
유적에는 먼데 산을 배경으로 이미 백화가 진행되어 자연석인지 가공한 돌인지 구별이 되지않는 석재 기초가 많다.
2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고 모습을 유지하는 석축도 일부 남아있다.
그런 곳에는 거의 예외없이 아테나의 선물이라는 올리브 나무가 돌벽을 뚫고 자라고 있었다.
유적의 도로는 소박하게 한 쪽 또는 양 쪽에 밝은 색 돌을 줄지어 놓았다.
때로는 올라가고 또 내려가는 그 길은 사람이 많지 않은 덕에 무척 평화로운 산책길이 된다. 이 곳을 걷던 수천년 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곳곳에 핀 야생화는 자신이 신이 머물던 자리에 핀 건지 알 턱이 없다. 옆에 누운 신전의 기초가 기억을 잃은 것과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새벽부터 고생한 현대 i10이 다소곳이 면벽수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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