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모스는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의 아들이며 제우스가 납치해서 크레타로 데려간 에우로페와 남매 지간이다. 딸을 잃어 버린 아게노르 왕은 왕자들에게 공주를 찾아오라고 명령하면서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도 말라고 한다. 동생을 찾아다니다 용을 죽인 카드모스는 그 이빨을 땅에 뿌리고 고대도시 테베를 세우고 왕이 된다. 아버지 말을 너무 충실히 지킨 고지식한 아들이 아니었을까? 결국 아비는 자신의 말 때문에 아들까지 다시는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지금도 아티카 반도의 중앙에 있는 테베 시에 가면 카드모스 왕의 궁전 터가 유적으로 발굴되어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지만 어엿한 도시 한 복판에...
신화 속에서 보던 인물이 그리스에 와 보니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 그가 살던 왕궁 터를 보게 된다. 결국 신화나 전설은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에 입으로 전해지던 역사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쇠창살 너머에 있는 왕궁 터는 기초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각 구역을 지탱하고 있던 돌 담은 미케네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서 테베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테네의 입장에서 보면 얄미운 도시국가였다. 아테네와 가까이 있어 항상 견제의 대상이었으며 사사건건 아테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테베는 아테네나 스파르타와 달리 페르시아에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일종의 배신자 였다.
테베는 변변한 산도 주변에 하나 없는 평야에 있으므로 농업적으로 아테네 보다 훨씬 성공적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보니 아테네나 스파르타에게 복종하고 2등 국가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강자로 부상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에 찾아 왔다. 스파르타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도덕적 해이로 붕괴되었고 테베가 뒤를 이어 최강국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누구의 침실이었을까? 돌로 만든 구획을 정리한 벽들이 공간들을 나누고 있는데 사이사이에는 복도였을 것 같은 좁고 긴 공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최소한 3천년전에 지었을 유적을 보고 있는 감동은 그리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은 그 바깥의 나무와 잡초가 우거진 공간과 완연한 대비를 이루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카드모스 왕궁 유적에서 약 이십분을 걸어가면 아폴로 신전의 유적인데 지나다가 본 교회의 건물은 아주 평범하다. 고대 이후 그리스는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렀기 때문일까.
길가에 버려진 가옥의 기와가 쇠락한 그리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벽에는 낙서가 수학 식처럼 써있다. 영어로 바꿔쓰면 B. Lebentis로 쓸수 있는데 사람 이름 같기도 하다.
아폴로 신전은 소나무들이 커다랗게 자라 장승처럼 신전을 지키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침 한 여름의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어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에페소스에 갔을 때 본 아르테미스의 신전에는 기둥 하나만 서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는 잡초벌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기둥하나도 서 있는 것이 없고 이곳 저곳에 파헤쳐진 흔적 뿐이다.
중간 정도에는 철사 철조망을 둘러 친 공간이 있고 그 안에는 발굴이 진행 중인지 벽의 흔적이 드러나 있다.
수천년 동안 사람이 계속 살아 온다는 것은 유적에게는 재앙일수도 있다. 사람들은 유적에서 기둥과 석재를 가져다 자신의 집을 짓는데 사용하곤 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엄청난 석재를 로마시민들의 가정집이나 공공 건물에 도둑맞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폴로 신전 옆으로 주택가가 있고 길에는 자동차가 한적한 길을 달려가고 종종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지만 유적에는 머무는 내내 나 혼자 뿐이었다.
테베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테르모필라에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을 닮기 위해 300인 필승부대를 양성했다. 그리스 내에서 최강의 군대로 성장한 이 부대의 무용담은 테베의 성장의 디딤돌이되었다. 이 부대는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성애를 장려했다고 하는데 150쌍의 동성 커플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과거의 일을 오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고 하지만 동성애가 그렇게 널리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졌다는 것이 놀랍다.
소나무 그늘이 시원해서 유적을 돌아보기는 좋았지만 그래도 고대에는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 였던 테베의 주요 신전이 이렇듯 무심히 버려졌다는 것이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곳은 무심히 과거의 돌 담이 드러난 채로 버려진 것 같았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신전의 사제들이 제사를 모시던 곳인지도 모른다. 오후의 해는 내 그림자를 길게 유적 위로 드리운다.
무슨 용도의 장소이기에 고고학자들이 이렇게 깊은 구멍을 파놓았을까. 짐작이 되지 않는다.
아폴로 신전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는데 갈 떄는 놓쳤던 유적 표시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교회 유적이라는 팻말과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공터에 담벼락 일부가 남아 있었다.
주변의 풍경은 가난한 농부의 집들이 몇 채 있을 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테베를 떠나기가 아쉬워 카드모스 왕의 궁전을 다시 찾아 아침 산책을 했다.
어제는 찾지 않았던 요새화된 고대의 문이 있던 곳에 도착했다.
철조망 너머에 부서진 항아리와 돌 조각들만 뒹군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고대 성벽의 흔적이 잡초들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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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이 우거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길을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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