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그리스여행]30 델포이: 옴파로스에서 전하는 퓌티아의 신탁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신탁을 철석같이 믿었다. 영어로 오라클 oracle이라 부르는 신탁은 무당이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스 전역에는 신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었고 그중에서도 델포이는 최고의 신통력을 가진것으로 유명했다. 

나우팍토스를 지나 동쪽으로 한시간 가량을 달리다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산악지형을 30분 이상 올라가야 한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달리는 길은 오랜만에 완만하고 곧게 뻗어있다. 몇 개의 샌드비치를 지나치다가 나는 도저히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천국같은 바다를 발견하고 차를 멈췄다.

 점심을 맥주 한잔과 함께 먹고, 파라솔에서 졸다가, 바다물에 몸도 담궜다가 떠나온 이름도 모르는 해변이 아름답다. 역시 그리스 여행의 백미는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비치가 있다는 것이다.  

길은 다시 이어지고 바다를 따라 달리는 도로와도 이별하려 한다.

트로이젠의 유령들과 오르코메노스의 험한 길, 그리고 레판토의 유령들까지 겪고 달려온 나의 작은 애마가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덜덜거리는 차였지만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그게 현대차여서...

길은 이제 앞에 있는 험한 산을 향해 달려간다. 델포이 신탁이 있는 곳이다. 

한참을 숨가쁘게 올라야 하는 험한 산이다. 

뒤를 돌아보면 떠나 온 바다가 멀리 안개 속에 잠겨있다. 

작은 발코니가 있는 호텔 객실을 깔끔하다. 

발코니에 삼각대를 세우고 산 아래 평원과 바다를 렌즈에 담는다.

호텔을 나서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산 꼭대기의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로는 양 옆에 가게들이 뺴곡하다. 한 여름인데도 산이 높아 선선한 바람이 분다. 

신전들을 찾아가는 길에 커다란 뭉게구름이 산을 넘어 오고 있다. 사방은 맑고 깨끗하다.

역사 또는 신화

델포이의 신탁은 퓌티아라고 부르는 무녀가 읇조리는 말을 해석하여 신청인에게 전해졌다. 이 여자 무당은 세상의 배꼽이라고도 불리우는 옴파로스라는 계란형 바위 위에 앉았는데, 그곳엔 유독 개스가 올라오는 구멍이 있었다. 

박물관에서 옴파로스 바위의 실물을 확인하고 다양한 석상들을 먼저 구경하며 태양이 조금 더 기울기를 기다린다.

유적은 산을 오른편에 두고 산비탈에 지어져 있었다. 초입에는 둥근 아치들이 여럿있고 그 안에는 기둥이 하나씩 있다. 기둥 위에는 조각들이 놓였던 좌대가 있다. 

'신성한 길'이라 이름붙여진 길 초입에는 아테네의 금고가 있다. 잘 보존된 지붕까지 남아있는 돌 건물이다. 델포이는 영험한 신탁을 받으려는 여러 국가들이 진기한 공물을 헌납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번영했던 아테네는 아예 그들이 바친 공물을 보관하는 건물을 지었다. 

오르막인 신성한 길을 가다 본 아테네 금고와 멀리 산 아래 올리브 나무 숲 속에 여신 아테나 신전이 보인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아탈로스의 스토아가 나타나고 그 뒤로 아폴로 신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신전의 바닥과 기둥만 몇개 남아있는 모습이다.

아폴로 신전은 산의 암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신전 기둥과 산이 하나가 되어 버린다. 풍상에 절은 세월이 같기 때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폴로 신전을 지나며 뒤를 돌아보면 신전 기둥 너머 탁 트인 하늘과 그 아래 아테네 방향의 산들이 보인다.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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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신전을 지나면 길을 오른편으로 오르막이 되고 길은 원형극장으로 이어진다.

오후 5시가 넘었어도 태양은 뜨거움을 잃지 않고 발 아래 풍경때문에라도 자꾸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된다. 흔치 않은 나무그늘 아래 젊은 커플이 쉬고 있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신탁을 구하는 것일까.

치기어린 장난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휴식. 젊음은 원래 그런 것. 미래를 알면 좋을 수도 있지만 우울할 수도 있으니까.

산 아래를 볼 때마다 사진을 찍게 되는 아테나의 신전. 홀로 떨어져 고고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드디어 원형극장의 꼭대기에 올랐다. 사람들은 더 올라가면 스타디움이 있다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나는 이 곳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형극장 옆의 수로는 아직도 건재하다. 

오후 6:30. 유적이 문닫을 시간이란다. 원형극장 무대 복판에 박물관 직원이 서서 우리를 부른다. 소포클레스 한 토막이라도 읽어 주었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아테나의 모습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빛이 조금 전과 또 달라졌으니...

산 그림자가 아테나 신전을 삼키려는 순간이다. 아폴로 신전은 그늘 속에 이미 잠겨 더위를 식힌다.

나무그늘의 젊은 커플 중 여자만 남았다. 사진은 혼자 있는 모습이 더 좋다.

땅거미가 지자 앞 산의 갈비뼈들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모두 돌아가는 길. 

아폴로 신전 기둥 옆으로 달이 떴다.

산하를 호령하듯 내려다 보는 아폴로 신전의 영험한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2천년도 더 된 과거에 이곳은 화려한 기념 건축물로 빛났을 것이다. 이제는 어지럽게 담벼락을 이룬 돌들만 굴러다닌다.

저 좌대 위에는 누구의 얼굴이 있었을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마을의 골목들을 살펴 보았다. 

계단이 많은 것은 산비탈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견뎌야 할 숙명일 것이다. 

소박한 어느 가정집 정원에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인형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골목 안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작은 음식점 타베르나가 곳곳에 자리잡고 저녁을 준비한다. 

산을 내려가는 옛날 길이 있는 곳에 낡은 집이 무너져 가고 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올리브 나무는 생명을 이어나간다. 

델포이를 떠나는 아침이다. 어제 올라온 먼 바다는 안개에 잠겨 있다. 

아테네로 가는 길을 따라 떠난다. 산을 넘는 길은 나우팍토스에서 오던 길보다 험준하다. 산 꼭대기를 돌아서기 직전 차에서 내려 이제는 눈 아래에 펼쳐진 델포이를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그리스 정교회 교회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간다. 

잊을 수 없는 아테나 신전.

그리고 아폴로 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