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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북쪽의 보이오티아 지방에 있는 플라타이아이 Plataea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다. 

기원전 49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2500년 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에게해에서 눈에 가시같은 존재로 성장한 아테네를 응징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한다. 이때 아테네에서 참주 (지금의 독재자와 유사) 노릇을 하다 추방된 히피아스를 길잡이로 삼았다. 아테네 근방을 아티카 지방이라고 부르는데 히피아스는 이곳의 지리도 잘 알고 있었기에 대군을 실은 함대를 마라톤 해변에 상륙시킨다. 

아테네에서 40여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접근하는 페르시아의 함대를 대적하기 위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힘을 합하기로 했다.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하던 스파르타 역시 참전을 약속했는데 이때가 마침 그들의 축제기간이라 참전을 미루어야 했다. 미신이 판치던 시대였으니 스파르타 사람들의 터부를 탓할 수도 없다. 아테네 근처에 있던 테베는 강력한 도시국가이기는 했으나 이들은 아테네와 갈등이 잦아 오히려 페르시아 편을 드는 지경이었다. 

고립무원의 위기에서 아테네와 테베 사이에 있는 '플라타이아이'만 병력을 보내 돕는다. 천 여명의 중장보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작은 도시 플라타이아이에서 싸울 수 있는 모든 남자였다고 한다.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테네는 자신들을 도와준 이 작은 도시를 최고의 우방으로 대접했다.  스파르타 역시 이 도시의 영웅적 행동을 칭송하며 그 후로 영원히 이 도시를 공격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다.

테베를 떠나 남쪽으로 약 3-40분을 달려 플라타이아이에 도착했다. 

보이오티아의 전형적인 지형으로 높은 산이 없는 평야지대였다. 그런데 한 때 도시가 있었던 흔적도 없다. 테베가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었다더니 빈 말이 아니다. 

마라톤 전투가 있은 후 약 60년이 흐른 기원전 431년. 그리스는 페르시아는 물리쳤지만 국내에서 도시들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리스에는 민주정과 일부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이 대립하고 있었다. 아테네는 민주정의 대표주자, 스파르타는 과두정의 대표주자로 서로의 세력을 확대시키고자 했다. 테베는 스파르타 편,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네 편인 민주정을 펼치고 있었는데 테베에서 300명의 정예부대를 보내 플라타이아이의 민주정을 전복시키려 했고 실패했다. 플라타이아이는 포로 전부를 처형하는 강수를 둠으로써 테베와 철천지원수간이 되고 만다. 

테베는 동맹인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스파르타는 마라톤 전투 후에 한 약속때문에 이 도시를 공격하지 않고 중재를 시도했다. 중립을 지킨다면 공격하지 않겠다고....

위기를 맞은 플라타이아이 지도자들은 아테네에 사절을 보내 상의했다. 아테네 민회는 스파르타의 제안을 거부하도록 시켰다. 그 말 속에는 당연히 아테네가 돕는다는 것이 깔려 있었다. 스파르타는 자신들의 제안이 거부되자 이 도시를 포위하고 공격했다. 무시무시한 스파르타의 공격을 일년 동안이나 버텼지만 무정한 아테네는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참 야박한 인심이다. 

스파르타는 이 도시를 점령한 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며 테베에게 이 도시를 맡겼다. 그리고 테베는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 결과가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황무지인 것이다. 

스파르타의 공격을 일년이나 견딘 성벽이라면 상당한 규모라야 한다. 그러나 이 평지에는 그 흔적이 없다. 무섭도록 외로운 평야의 적막이 오히려 멸망한 플라타이아이 사람들의 절규처럼 들린다. 우리 귀는 너무 큰 소음은 듣지 못한다고 했던가...

세월과 인심의 무상함을 느끼며 따가운 여름의 햇살 아래 들판을 거닌다. 그러다 돌 무더기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유적의 한 켠에 사각형으로 깍아 가운데를 파낸 돌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 곳에 모두 있었을리는 없고 유적에서 발견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메마른 보이오티아의 여름 들판 한 쪽에 몇 그루의 소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었다. 그늘을 찾아 다가가니 작은 언덕을 소나무가 덮고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놓은 석재들이 모아져 있다.

그리스의 여름은 낮에는 40도에 육박하는 고온이지만 건조한 덕에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소중한 소나무 그늘의 버려진 석재에 앉아 2천5백년의 세월을 느껴본다.

기원전 480년. 마라톤 전투가 있은지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다리우스 대왕은 패배의 분노를 안고 죽었고 아들 크세르크세스 2세가 복수의 칼을 갈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영화 300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테르모필라에 전투에서 이기고 아테네를 점령하고 철저히 복수했다. 그러나 살라미스 해전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하고 왕은 도망치듯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는 주력 육군 30만명(출전: 헤로도투스 역사)을 남겨 마르도니우스 장군으로하여금 정벌사업을 마무리하도록 했다. 이듬해인 기원전 479년 8월, 스파르타를 위시한 그리스 연합군 11만명 (출전: 헤로도투스 역사)이 바로 이 플라타이아이 평야에서 결전을 벌였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군을 격파했고 페르시아를 그리스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결정적인 전투가 되었다. 


40만명이 목숨을 걸고 싸웠을 법한 넓은 들판. 지금은 그들의 피가 말라버리고 군데군데 농지만 있다. 

황폐한 들판을 싸돌아 다니는데 무릎 높이로 자란 잡초들이 반바지만 입은 다리를 아프도록 찔러댄다. 자세히 보니 온 몸이 창인 잡초가 독이 오른 모양으로 노려본다. 

조심하려 해도 숨어있는 잡초의 날카로운 가시는 어느틈엔가 다리에 상처를 낸다. 한시간 남짓의 배회에서 두 종아리는 채찍을 맞은 것 처럼 변했다. 성을 지키려는 플라타이아이 병사들의 원혼이 이 잡초로 환생해 침입자를 공격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야생화 한송이를 발견했다. 희귀한 모양의 꽃 이름도 모르지만 붉은 빛이 아름답다. 

이제 이곳과도 이별할 시간이다. 도로에 주차한 차를 타러 간다. 박물관도 요금소도 지키는 이도 없는 플라타이아이는 역사 속에서만 남게 될 것이다. 또 나의 기억이 남아있는 동안 기억될 것이다. 

편도 1차선 도로를 따라 차들이 지난다. 그 안의 사람들은 이곳에 얽힌 영광과 좌절을 모른채 지나간다. 어차피 세상이란, 삶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자는 어쩐지 쓸쓸함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