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한시간 남짓한 비행을 마치고 크레타의 수도 헤라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한다. 미노아 문명의 요람이 된 이 거대한 섬은 5천년 전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다.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렌트카를 달려 호텔을 찾아 간다. 기원전 1500년 경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로 쓰나미가 밀려 왔던 바다는 잠잠하고 태양은 더욱 뜨겁다.
크레타는 에게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이 섬은 키클라데스 제도의 가장 큰 섬, 낙소스 보다 20배나 크고, 아프리카와 소아시아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길목에 있어 교역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와, 중동에서는 메소포타미아와 교류하면서 유럽최초의 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요람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도 크레타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곳이라는 암시가 나타난다. 우선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가 출생 직후부터 크레타의 이다 산에서 성장했다는 신화가 그것이고, 성장한 제우스가 황소로 변해 에우로페를 크레타로 납치한 후 미노스를 낳게 했다는 것이다. 에우로페는 영어로 Europa라고 쓴다. 바로 유럽의 시작이 크레타 섬이란 암시가 아닌가.
호머는 불후의 명저 오딧세이에서 크레타의 번성을 ‘90개의 도시가 있는 섬’으로 표현하였다. 고대나 지금이나 시내는 복잡하다. 호텔도 크고 작은 것들이 가득하다. 작은 골목에 있는 호텔 앞에 나서면 에게해가 코 앞이다.
헤라크리온 고고학 박물관은 여간해서 박물관을 잘 가지 않는 사람에게도 꼭 봐야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박물관 가는 길에 보이는 견고한 성채는 중세의 것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천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서 나온 것 같은 그릇들이 짧게는 3천년, 길게는 5천년 전의 것이다.
벽화가 그대로 보존된 것을 전시해 놓은 곳에 오면 미노아 예술의 정교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프레스코 스타일의 그림은 계란을 이용하기 때문에 금방 굳어 버려 매우 빨리 작업을 해야한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삼천오백년 전에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곳의 시간대는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보다 최소한 천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부터 9천년 전인 기원전 7천년 유물라는 안내판이 더 신기할 지경이다.
전시된 물건 중에 팔을 들고 서있는 사람의 모양이 미노아 문명보다 먼저 꽃피었던 키클라데스 문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각종 토기 중에서도 한참을 바라 보았던 붉은 토기는 마치 보조 연료통을 옆에 달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두개의 구모양 저장기를 연결한 파이프는 속이 비어 있었다. 지금도 저런 것을 만들기 쉽지 않을 듯한데...
기원전 1900년에 만들어진 토기는 주둥이가 6장의 꽃잎처럼 만들어졌다. 그리고 내부에는 작은 꽃 모양의 장식 들이 더 들어 있다.
크노소스 궁전을 복원한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다. 3500년 전에 6층 건물로 지었다는 규모가 상당하다. 그냥 보아도 다에달로스의 손길이 느껴진다. 라비린스라고 불린 이 미로구조는 소와 미노스 왕의 왕비 사이에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한 것이었다.
아테네의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 공주를 꾀어 미로에서 빠져나온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노아 문명의 최대 스포츠는 황소타기 였다. 정면으로 달려오는 소 뿔을 잡고 날아 올라 착지하는 것인데 요즘 엄홍철 선수가 잘하는 체조 종목 안마와 비슷한 것 같다. 상아를 깍아 만든 소 타는 소년 조각이
칼슘 덩어리인 상아가 세월에 삭아버릴 정도로 오래 되었지만 그 역동적인 조각의 아름다움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예술품이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선수가 거친 숨을 내쉬는 것 같다.
미노아 문명은 양날의 도끼로 상징된다.
미노아 문명은 소를 숭상했다. 반인반우의 미노타우로스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것도 소를 숭상하는 크레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소의 머리 조각은 검은 대리석을 깍은 것으로 조각의 섬세함과 눈동자의 생기가 아름답기 그지 없다. 3500년 전 작품이라고 자랑스럽게 써있다. 놀라움...
박물관은 저녁6시면 문을 닫으므로 언제나 시간이 촉박하다. 관람이 끝나고 다시 바닷가로 나가 베네스가 지은 성채가 아름답게 석양을 받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침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가 사진을 찍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오늘날까지 에게해를 주름잡고 있는 크레타와 그 성벽은 이곳이 전략적 요충임을 상기시킨다.
잊을 수 없는 미노타우로스의 두상을 뒤로 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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