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버팀은 한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할 길이 없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위협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어떤 재난이 와도 도망칠 재간이 없기에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구책을 최대한 동원해 그 시간들을 버텨 내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그러니 가시투성이의 흉한 모습으로 변하면서까지 버틸 필요가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굴욕적인 겉모습까지 감내하며 끝까지 버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오히려 칭찬해 줘야 마땅하다.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펠라는 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곳에는 고대 성벽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 고목이 된 풍경이 있다. 2천년 전의 성벽은 모두 사라졌지만 작은 씨앗이 떨어진 곳 만은 나무의 일부인 듯 아직 살아남아 달빛을 받고 있다.
신기한 것은 나무가 제 자식 키우는 법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육아 원칙은 하나, ‘최대한 멀리 떼어 놓기’다. 자신의 그늘 밑에선 절대로 자식들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보호라는 미명 하에 곁에 두면 결국 어린 나무는 부모의 그늘에 가려 충분한 햇빛을 보지 못해 죽고 만다
한 예로 햇볕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씨앗이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도록 가지 제일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는,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미련 없이 씨앗을 날려 보낸다. 다만 어미 나무는 싹이 제대로 틀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을 챙겨 줄 뿐이다. 그러니까 씨앗을 감싸고 있는 배젖은 먼 길 떠나는 씨앗에게 어미 나무가 챙겨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시락인 셈이다.
그렇게 멀리 떠난 어린 씨앗은 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오직 제 힘으로 자란 덕에, 죽을 때까지 저만의 삶을 씩씩하게 꾸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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