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독일이 침공할 당시 독일이 평가한 것 보다 훨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탱크의 수는 개전 당시 24000대나 되었다. 그때까지 생산된 탱크의 성능은 떨어졌지만 압도적인 숫자는 독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히틀러 조차 탱크가 2만대나 있는 것을 알았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력은 보병지원용 T-26 전차와 시속 72킬로미터를 자랑하는 BT-7 전차였으나 허술한 관리로 전체의 30% 정도만 실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였다.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개전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최고 성능 전차인 T-34를 개발완료하고 1500여대를 실전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탱크를 포함한 소련군의 병력규모는 개전당시 540만명에 달해 세계 최강의 수준이었던 사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소련 군사력의 핵심 무기는 열악한 도로사정이었다. 독일 수뇌부가 "소련의 도로사정이 프랑스 만 같았으면 전쟁을 몇 달 만에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형편없는 도로 사정은 독일군이 자량하는 전격전의 효과를 모두 진흙 속에 파묻고 말았다.
"소련군은 사실상 모든 것을 처음부터 뜯어고치는 혁명이 필요했다. 군사령관과 고급장교로부 더 말단의 장병들까지 도대체가 어떻게 싸울 줄을 몰랐으며 가장 기초적인 교범조차 숙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기 숙청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겁한 존재들로 퇴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 정도이다 보니 전차부대의 집단적 운용과 같은 선진적인 구상이나 근대전의 대책은 수립될 수 조차 없었으며 전차와 포병, 보병간의 제병협동 따위의 복잡한 교리나 작전계획은 상정하기 힘든 상태였다. 그와 같은 군대가 지난 2년 동안 전 유럽을 휩쓸면서 유사 이래 최강의 군대, 전 세계에 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독일군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어야 한다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따 라서 소련군은 질적 수준을 제고할 때까지는 무조건 양으로 막아야 했으며 기초훈련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징집이 이루어졌고 군복을 입지 않고 무기를 든 파르티잔들 까지 정규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어..." from 허진 바르바로싸
공군 역시 독일은 소련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1941년 봄, 소련은 매월 1100여대의 전투기를 생산하면서 독일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추었다. 개전 당시 독일이 280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한데 반해 소련은 무려 810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소련의 항공기 중 상당 수가 구형이긴 했지만 새로이 개발된 MIG-3, Yak-1 전투기 등은 독일의 최신예 전투기에 비해 손색이 없는 우수한 기종이었다.
다만 소련의 군사 체제는 전근대적이라 공군 역시 육군과 마찬가지로 훈련과 운영방식이 독일에 뒤쳐졌다. 특히 신형기에 대한 훈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같은 교육훈련의 공백은 스탈린이 자행한 대숙청 기간에 3명 이상의 공군 사령관과 무수한 고급장교들이 군에서 축출당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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