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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샹그릴라!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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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그리스여행]24 키파리시아의 아름다운 바다와 언덕위의 성 나그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 끝까지 간 후 북상한다. 숙소는 바닷가의 휴양도시 키파리시아. data-matched-content-ui-type="image_stacked" data-matched-content-rows-num="4,2" data-matched-content-columns-num="1,2" 호텔은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수영복 차림으로 비치에서 오후의 휴식을 즐긴다. 수영복만 입은 웨이터가 희한한 쟁반으로 음식을 나른다. 바다에 몸을 담그니 방금 내려온 이토메 산이 멀리 구름 아래 보이고 물빛은 투명한 에메랄드 색이다.파라솔에 누워 간단한 스낵과 알파 맥주를 시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비치에는 3-40명 정도의 사람들이 여름 바다에서의 휴가를 즐기고 있다.흰 캔바스 천..
[두번째 그리스여행]23 메세니아 고대유적: 스파르타 노예 헬로이타이 들의 고향 메세네 Messene 또는 메세니아 Messenia는 마니 반도의 아기오 니콜라오스 마을에서 북서 방향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스파르타에서 보면 서북쪽이 된다. 80킬로미터를 가는데 거의 두시간이 소요될 만큼 지형과 도로는 험하다. 역사 도리아 인이 펠로폰네소스로 유입되던 기원전 1200년경, 아르고스, 스파르타, 메세네 등은 모두 도리아 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원주민 펠라스고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피지배계급으로 전락했다. 메세네를 지배하던 도리아 인은 스파르타의 도리아인에게 정복당하고 노예신분으로 전락했는데, 스파르타의 노동력 근간을 이룬 헬로이타이 (또는 헬로트) 중 상당수가 메세네 인이었다고 한다. 유적 기원전 8, 7, 4세기 세번에 걸친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철저히 짓..
[두번째 그리스여행]22 마니 반도의 어촌 마을 아기이 니콜라오스 풍경 마니 반도를 넘는 날. 하루 여행의 목적지는 아기아 니콜라스라는 마을이다. 스파르타에서 직선거리는 30여 킬로미터지만 산이 험해 기티오까지 내려가서 돌아 올라와야 하느라 두시간이나 걸린다. 모넴바시아에서 오는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이다. 힘들게 찾아간 펜션은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쁜듯 했지만 마을은 조용한 휴식을 취하기 알맞다. 마을 길은 오래된 시골 마을이 다 그렇듯이 불규칙적이고 좁다. 정다운 길을 요리조리 돌아 나가면 작은 부두와 바다를 마주한 식당가를 만날 수 있다. data-matched-content-ui-type="image_stacked" data-matched-content-rows-num="4,2" data-matched-content-columns-num="1,2" 나그네가 지나 ..
[두번째 그리스여행]21 마니 반도의 거친 아름다움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독수리의 발과 흡사하다. 반도 안에 네게의 작은 반도를 가지고 있는 것. 우선 아테네를 마주하는 가장 동쪽 반도에는 영웅 테세우스가 자란 트로이젠이 있고, 스파르타를 지나 남동쪽으로 달리면 만나는 두번째 반도에 모넴바시아가 있다. 마니는 세번째 발가락 모양의 작은 반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반도를 위성촬영한 영상을 보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다른 곳보다 훨씬 험준한 산맥이 반도를 등뼈처럼 가로지르고 있다. 이같은 지형은 외부와의 단절을 초래해 발전이 느리고, 외부 세력에 저항적인 사람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여행스케치모넴바시아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을 떠난 나그네는 북서쪽으로 달려 항구도시 기티오를 지나 마니 반도로 들어간다. 스파르타의 핵심항구였던 기티오의 소박한 번화함은 도시를 떠..
[두번째 그리스여행]20 모넴바시아: 에게해의 두브로브니크 스파르타의 주력 항구는 남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항구도시 기티오Githio였다.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약 50킬로를 더 가면 모넴바시아에 도착한다. 서기 375년 발생한 지진으로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 섬이 된 이곳은 방파제 덕에 다시 육지와 연결되었다. 얼핏보면 제주도 성산 일출봉을 보고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이 닮았다. 모넴바시아는 그리스어의 모네mone와 엠바시아emvasia의 합성어로 ‘하나의 입구’라는 뜻이다. 역사 몽셍미쉘이 커다란 수도원 섬인데 반해 모넴바시아는 583년에 세워진 비잔틴 제국의 요새였다. 돌 산의 정상은 마치 테이블처럼 평평해 병영은 물론 30명을 먹일 수 있는 농지까지 요새 안에 둘 수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3년간이나 수성을 한 적까지..
[두번째 그리스여행]19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 - 레오니다스 왕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만티네아에서 정남향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북쪽에서 접근하는 길은 산들을 넘어야 한다. 스파르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자연 방벽이라고 할 엄청난 산들이다. 산 속에 묻힌 농업국가가 스파르타 였다. 그들은 일단 터를 잡고 나서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데 열성적이지 않았다. 수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아테네와는 대조적이다. 성벽에 가까이 다가가 스파르타 장갑 보병의 눈으로 주위의 산 마루를 살펴본다. 펠로폰네소스 북부에서 접근하는 길은 살짝 내리막인 길과 평지를 달리다 바로 스파르타 도심을 관통한다. 편도 2차선인 도로는 가로수가 심어진 화단이 중앙선을 대신한다. 평범한 지방의 소도시. 이 조용한 마을이 스파르타이다. 역사 스파르타는 그리스 고대사 그 ..
[두번째 그리스여행]18 미스트라: 찬란했던 비잔틴제국 제2의 도시 산위의 도시, 미스트라는 15세기 서양 문명의 중심지였다. 스파르타를 멀리 내려다 보는 산 정상에 버려진 많은 건물의 잔해는 어떤 것은 아직도 건재하다.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점령당한 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많은 것이 의미를 잃어갔다. 찬란했던 시절을 증언이라도 하듯 교회 안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달리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빈 자리가 없다. 아름답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절벽을 따라 세워진 건물들은 시간이 멈춘 듯 15세기 비잔틴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data-matched-content-ui-type="image_stacked" data-matched-content-rows-num="4,2" data-matched-content-columns-num="1,2" 유적으로 들어가는 망루는..
[두번째 그리스여행]17 만티네이아: 스파르타 아테네 테바이의 격돌 만티네이아 Mantinea는 그리스에서 보기 드문 평야 지대이다. 그래서 고대의 판도를 바꾼 대규모 전투가 두번이나 치러졌다. 그 첫번째 전투는 기원전 418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때이다. 당시 스파르타의 왕은 아르키다무스 왕의 아들 아기스였다. 이 어린 왕은 기원전 420년 경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을 끌고 참전했으나 아테네와 교전을 피하고 동맹과 상의도 없이 휴전을 체결한 후 귀국하였다. 분노한 스파르타 시민들이 10000드라크마의 벌금(50억원상당)을 물리고 집까지 부숴버렸다. 궁지에 몰린 왕은 다른 전투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집정관들에게 호소하여 조건부 허락을 받는다. 조건은 왕이 군사행동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상의해야하는 고문을 데리고 출전하라는 것. 이윽고 전투는 만티네이아 평야에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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