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분열된 하나일 수 있는 이유
그리스는 정말 깜짝 놀랄만큼 산이 많다. 지도에서 2-3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도 가려고 들면 차로 한시간이 더 걸리는 산길을 달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형이 그렇다보니 인접한 마을들이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산에 가로막혀 연락조차 힘들고 지배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 결과 모든 마을은 다 독립국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엄청난 산 자락에 마을 하나가 있다. 외부에서 오려면 저 산을 넘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독립성을 견지하면서도 그리스의 사람들은 그들 모두가 형제라는 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첫째 이유로 그들이 모두 올림푸스 산의 신을 숭배한 점을 들 수 있다. 헬렌의 후손이라는 인식에 같은 신까지 섬기고, 정기적으로 그 신을 위한 제사의식을 합동으로 개최함으로써 동질성이 강화되었다.
암픽튀온 연합 Amphictyonic council은 델파이의 강력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내 최고의 종교 연합이었는데 일년에 두번 모든 마을이 참석하는 합동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봄에는 델파이의 아폴로 신전에서, 가을에는 테르모필라에의 데메테르 신전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그리스내 12부족의 대표가 참석했고 각 대표는 몇개의 도시나 국가를 대표했다. 이 연합은 정치적 색채는 전혀없는 단순한 종교모임이었다.
Game은 그리스가 통일성을 유지한 또다른 주요 원인이다. 기원이 언젠지는 몰라도 BC776년 엘리스의 이피투스 왕이 리바이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올림픽 게임이 가장 큰 시합이었으며 모든 그리스인이 참가할 수 있고 우승자는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올림피아 경기장 모습]
매 4년마다 열린 이 시합은 올림피아 부근의 엘리스Elis란 도시가 주최했는데 처음엔 달리기 시합만 했기때문에 하루동안 열리다가 종목이 추가되면서 닷새동안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모든 그리스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여 대회가 열리는 달에는 하던 전쟁도 중지하고 평화를 유지하였다. 단 한번, 개최자인 엘리스가 이를 위반했던 것을 제외하고.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 세개의 대회가 더 생겨났다. 퓌티아, 네메아, 이스트미아 게임.
[네메아 경기장의 모습]
퓌티아 게임은 올림픽 전 해에 암픽튀온 종교연합 주관으로 포키스의 평원에서 개최되었다. (지도의 2번 표지) 시합은 운동에 그치지 않고 음악과 시를 추가하였으며 올림픽 게임에 이어 두번째로 중요한 위상을 누렸다.
코린트에서 가까운 네메아와 이스트무스 게임은 매2년 마다 열렸는데 이들도 음악과 시를 경기 종목으로 채택하였다.
이 대회들은 그리스의 정치적 통일에 기여한 바는 없으나 참가자들이 모두 한가족이란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리스 인들이 정신적인 통일을 달성한 마지막 요인은 신탁이다. 모든 그리스인은 중요한 일을 하기에 앞서 신에게 예언을 요청했다. 델파이의 아폴로 신전이 가장 신통력을 인정받았는데 퓌티아란 무녀는 자신이 앉은 돌 사이로 올라오는 가스에 취해 무아지경에서 예언을 했다고 한다. 그녀들의 말은 애매모호한 것으로 유명해서 해석하기에 따라 완전히 반대의 뜻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스 인들은 정신적 유대감은 있었지만 아무리 작아도 모든 도시가 독립 국가였다. 아티카 지방만은 예외였는데 그곳의 도시들은 아테네를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수도로 여겼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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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대 역사]신앙 그리고 올림픽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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