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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장소/신화와 역사 (Myth & Place)

스파르타 여행 가이드 | 레오니다스의 도시, 300 영화의 실제 장소

by 유럽탐험 201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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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여행 가이드 | 레오니다스의 도시, 300 영화의 실제 장소

"이것이 스파르타!" 영화 '300'에서 레오니다스 왕이 외쳤던 그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그 전설적인 전사들의 도시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 타이게토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라코니아 평원에 자리한 스파르타. 요트 세일러이자 교수로서 펠로폰네소스 해안을 항해하며 반드시 들르는 곳, 스파르타의 진짜 모습을 안내합니다.

추천 일정
1~2일
아테네 거리
210km
고고학 박물관
€6
미스트라 거리
차로 10분

스파르타 시내 명소

레오니다스 동상

스파르타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입니다. 시내 중심부에 우뚝 선 청동 동상은 방패와 창을 들고 테르모필레를 향해 전진하는 레오니다스 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상 아래에는 "MOLON LABE(와서 가져가 봐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했을 때, 레오니다스가 응수한 말입니다.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구는 전 세계적으로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스파르타 여행 가이드 | 레오니다스의 도시, 300 영화의 실제 장소 사진 1

도리아 인이 남진하면서 펠로폰네소스를 정복한 초기엔 아르고스가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하지만 뤼쿠르구스 Lycurgus의 개혁 이후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를 넘어 전 그리스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뤼쿠르구스는 스파르타의 왕 에우노무스Eunomus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그의 형 폴뤼덱테스Polydectes가 왕이 되었는데 그 마저도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다. 그런데 임신 중이던 형수가 뤼쿠르구스에게 접근하여 적통인 아이를 제거하고 둘이 권력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악녀!


뤼쿠르구스는 이에 응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다가 아들이 태어나자 '민중의 기쁨'이란 뜻의 카릴라오스Charilaus로 이름짓고 스파르타의 군중에게 '미래의 왕'이라고 선언한 후, 초연히 스파르타를 떠나 오랜 기간 떠돌아 다녔다. 그는 그 시간동안 여러 나라의 체제를 살피고 스파르타 개혁 방안을 연구했다.

그가 오랜 방랑 끝에 스파르타로 돌아갔을 때, 조카 카릴라오스가 통치를 하고 있었지만 나라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당시 체제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뤼쿠르구스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오랜 세월 마음 속에 간직했던 개혁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델파이의 신탁을 청했다. 

[델파이 아폴로 신전은 높은 산위에 있다.]


신들의 지지를 약속한 신탁에 고무된 그는 30명의 무장한 스파르타 유력자들을 대동하고 시장거리인 아고라에 나가 개혁을 선포한다. 이후 격렬한 수구파의 저항을 모두 제압하고 개혁을 완성하자 뤼쿠르구스는 또 다시 초연히 스파르타를 떠난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그가 만든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맹세 하나만을 받고...


그는 제일 먼저 델파이로 가서 신탁을 구했다. 신탁은 '스파르타인들이 뤼쿠르구스의 개혁을 보존하기만 하면 계속 번영할 것'이었다. 뤼쿠르구스는 스파르타의 번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뤼쿠르구스의 첫번째 개혁은  게루시아Gerousia의 설치였다. 로마의 원로원에 해당하는 기구로 평민 28명과 왕 2인을 더해 30명으로 구성되며 왕과 맞먹는 권력을 행사했다.  이전의 스파르타는 민주주의와 군주주의 또는 무정부 상태와 독재 상태의 극단을 오가고 있었는데 다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게루시아가 생긴 후로 정치가 안정을 되찾았다. 게루시아는 민회가 선동가에 의해 오염되는 경우에 민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스파르타의 권력 핵심인 최고행정관, 에포로스 ephors는 뤼쿠르구스 사망 후 생겼다. 당시의 왕 테오폼푸스 Theopompus는 왕이 누리던 권력의 상당부분을 다섯명의 에포르에 양도했는데 그 이후 스파르타 인들의 왕에 대한 질시가 사라졌다. 이것은 끝까지 왕의 일인지배를 고집하다 왕정이 사라진 아르고스와 메세네의 경우와 대비된다. 


뤼쿠르구스의 개혁 중 가장 독특하고 또한 유명한 것은 syssitia, 즉 공동식사제도 였다. 스파르타의 모든 남성은 1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에서 항상 식사를 해야 했는데 심지어 아내와의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왕도 예외일 수 없었다. 따라서 여인네들은 7세가 넘은 남자와는 식사를 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대부분 여자들끼리 모여 식사를 했다.






동상 뒤편에는 스파르타 고대 아크로폴리스 유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비교하면 볼 것이 많지 않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건축물에 투자하기보다 군사 훈련에 모든 것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투키디데스가 예언했듯이, "스파르타가 폐허가 되면 후세 사람들은 이 도시의 위대함을 믿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현실이 된 셈입니다.

스파르타 고고학 박물관

레오니다스 동상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이 박물관은 고대 스파르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스파르타 전사의 대리석 흉상, 아르테미스 오르시아 성소에서 출토된 봉헌물, 청동 무기와 갑옷 등 흥미로운 유물이 있습니다. 특히 전사들이 성인식에서 사용했던 낫 모양의 칼(시클)과 아르카이크 시대의 미소 짓는 전사 흉상이 인상적입니다. 입장료 €6, 소요시간 약 1시간입니다.

올리브유 박물관 (Museum of the Olive and Greek Olive Oil)

스파르타 주변의 라코니아 지방은 그리스 최고의 올리브유 산지입니다. 이 독특한 박물관은 올리브 재배와 올리브유 생산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보여줍니다. 고대 올리브 압착기부터 현대 생산 시설까지 전시되어 있으며, 올리브유 시음도 가능합니다. 입장료 €3, 올리브유 선물 세트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올리브유가 왜 세계 최고인지 이해하게 되는 곳입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현장

기원전 480년, 레오니다스 왕이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와 함께 크세르크세스의 100만 페르시아 대군(실제로는 약 10~30만으로 추정)에 맞서 싸운 테르모필레. 이곳은 스파르타에서 북쪽으로 약 300km, 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스파르타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다소 먼 거리이므로, 아테네에서 델포이 방문과 묶어서 계획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스파르타 여행 가이드 | 레오니다스의 도시, 300 영화의 실제 장소 사진 2

현장에는 레오니다스의 기념비와 300 전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행자여, 가서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하라. 우리는 그들의 명령에 따라 여기에 누워 있노라"는 시모니데스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 테르모필레 지형은 고대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충적토가 쌓여 해안선이 후퇴했고, 좁은 협곡은 넓은 평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서면 300명이 수십만 대군을 상대로 3일간 버텨낸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방패를 들고 돌아오거나, 방패 위에 실려 돌아오거나."
- 스파르타 어머니들이 전쟁에 나가는 아들에게 하던 말

영화 "300"과 실제 역사 비교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6년 영화 "300"은 테르모필레 전투를 극적으로 재현하여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실제 역사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항목영화 "300"실제 역사
그리스 연합군스파르타 300명만스파르타 300 + 그리스 연합 약 7,000명
페르시아군 규모100만 이상약 10~30만 (학자 추정)
스파르타 갑옷윗옷 없이 맨몸청동 흉갑, 투구, 정강이 보호대 완전 무장
크세르크세스거인, 피어싱일반적인 외모의 페르시아 대왕
전투 방식개인 격투 중심팔랑크스 밀집 대형, 조직적 전투
에피알테스기형의 스파르타인현지 그리스인 배신자

영화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에 가깝지만, 테르모필레 전투 자체는 실제 역사입니다. 300명의 스파르타인과 약 1,000명의 테스피아이 전사가 마지막까지 남아 싸우다 전멸한 것은 사실이며, 이 희생이 그리스 연합군이 살라미스 해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점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스파르타 교육 시스템: 아고게

스파르타를 이해하려면 아고게(Agoge)를 알아야 합니다. 스파르타 남자아이는 태어나면 장로 회의에서 신체 검사를 받았고,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타이게토스 산 절벽에 버려졌다고 합니다(다만 이 부분은 고대 프로파간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7세가 되면 가정을 떠나 국가 교육 기관에 입소하여 본격적인 군사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음식은 최소한으로 제공되었고, 부족한 식량을 훔쳐 먹는 것도 훈련의 일부였습니다(단, 들키면 처벌). 맨발로 걷고, 1년 내내 한 벌의 옷만 입었으며,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20세에 정식 전사가 되었지만, 30세까지 병영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스파르타 여성의 지위입니다. 스파르타 여성은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와 달리 체육 교육을 받았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사회적 발언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성이 군대에 있는 동안 가정과 경제를 관리한 것이 스파르타 여성이었습니다.

미스트라: 비잔틴 제국의 보석

스파르타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UNESCO 세계문화유산 미스트라(Mystras)가 있습니다. 13세기 십자군이 세운 성채를 중심으로 발전한 비잔틴 도시로, 1249년부터 1460년까지 약 200년간 모레아(펠로폰네소스) 전제공국의 수도였습니다.

타이게토스 산 중턱에 자리한 미스트라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세 구역(상부 성채, 중부 도시, 하부 도시)으로 나뉩니다. 비잔틴 교회 7곳이 보존되어 있으며, 내부의 프레스코 벽화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특히 판타나사 수도원(Pantanassa Monastery)과 페리블렙토스 수도원(Peribleptos Monastery)의 벽화는 비잔틴 미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입장료 €12, 소요시간 2~3시간이며,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므로 편한 신발이 필수입니다.

마니 반도 연결

스파르타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마니 반도(Mani Peninsula)에 도착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최남단의 이 거친 반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독특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마니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파르타의 후예라고 여기며, 오스만 제국 시대에도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던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마니의 상징은 타워 하우스(Tower House)입니다. 가문 간의 복수전(벤데타)에서 방어용으로 지은 돌탑 건물이 마을마다 늘어서 있어, 마치 중세 토스카나를 연상시킵니다. 바시아(Vathia) 마을의 타워 하우스 군락, 디로스 동굴(Diros Caves)의 지하 호수 보트 투어, 타이나론 곶(Cape Tainaron,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로 가는 입구)이 하이라이트입니다.

맛집: 라코니아의 올리브유 요리

라코니아 지방의 음식은 최고급 올리브유를 기반으로 합니다. 스파르타 시내의 전통 타베르나에서 라가나(양고기 스튜), 카카비아(생선 스프), 호르타(야생 나물 올리브유 무침), 그리고 현지 올리브와 페타 치즈를 맛보세요. 1인 식사 비용은 €10~15로 아테네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고대 스파르타인들의 주식은 '검은 수프(Black Broth)'였습니다. 돼지 피와 식초로 만든 이 수프는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 사람들이 맛보고 "스파르타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행히 현대 스파르타의 음식은 훨씬 맛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세일러 팁

스파르타는 내륙 도시라서 바다에서 직접 접근할 수 없지만, 가장 가까운 항구는 기시온(Gytheio)입니다. 기시온은 스파르타에서 남쪽으로 차로 약 45분(46km) 거리에 있으며, 고대에는 스파르타의 공식 항구였습니다. 마니 반도를 세일링할 때 기시온에 정박하고, 렌터카로 스파르타와 미스트라를 당일치기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기시온 항은 수심이 충분하고 정박 시설도 양호합니다. 또한 기시온에서 키시라 섬(Kythira)이나 크레타 서쪽으로 이어지는 항해 루트도 가능합니다. 기시온 해안가의 해산물 타베르나도 훌륭합니다.

마무리하며

스파르타는 화려한 유적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파르테논 같은 웅장한 건축물도, 에피다우로스 같은 놀라운 극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 동상 앞에 서면, 타이게토스 산맥을 바라보면, "MOLON LABE" 비문을 읽으면, 2,500년 전 이 도시를 지배했던 정신이 느껴집니다. 스파르타는 건물이 아니라 정신으로 남은 도시입니다. 미스트라의 비잔틴 유적과 마니 반도의 거친 풍경까지 더하면, 펠로폰네소스 남부 여행은 그리스 여행의 백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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