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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Travel Journals)/그리스여행기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by 유럽탐험 202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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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곳곳에 핀 야생화는 자신이 신이 머물던 자리에 핀 건지 알 턱이 없다. 옆에 누운 신전의 기초가 기억을 잃은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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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는 오르코메노스가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아테네 북쪽 보이 오티 아 지방에, 나머지 하나는 펠로폰네소스의 아르카디아 지방에. 이번에 찾은 곳은 후자 —네메아 서쪽 첩첩산중, 산꼭대기에 있는 도시입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1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1

이 도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주요 도로를 굽어보는 산 정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전략적 요충지. 남쪽의 스파르타가 아테네로 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지나야했던 길입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2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2

그 길은 지금도 맞은편 산 아래를 지나갑니다.

기원전 420년경, 오르코메노스가 아르고스에 점령당합니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분노합니다 —자신들의 영토를 동맹이자 경쟁자인 아르고스가 점령했으니. 그리고 그 이유가 어린 왕 아기 스(Agis)가 연합군에 참가한 나라와 상의도 없이 아테네와 휴전을 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스파르타 시민들의 대응:

왕에게 50 억의 벌금을 매기고 집까지 부순 시민들. 그리고 곧바로 승리를 쟁취한 왕. 이것이 스파르타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이름의 두 왕이 모두 시민들의 돌팔매를 맞고 죽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신성 모독으로, 손자는 배신으로. 그 후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름이 운명이 된 비극적인 왕가.

2세기여행가파우사니우스가 찾았을 때만 해도 나무로 만든 아르테미스 상이 서 있었다고 하는 이 곳은 —입장권 매표소 이외에 지붕 하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3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3

산의 정상 부위에 만들어진 아크로폴리스는 코린트나 아테네의 그것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평지가 별로 없는 지형이라 땅의 모양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건축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4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4

고대 극장 역시 관중석은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좌석을 배치했는데 —거기서 연극을 보고 있으면 평야의 도로 감시가 저절로 되게 생겼습니다. 아르테미스와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었다던 곳에는 이제 주춧돌들만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나 있을 뿐입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5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5

눈길을 돌려 경계 석이 깔린 길을 따라가면

눈길을 돌려 경계 석이 깔린 길을 따라가면, 산 뒤편의 평야 지대가 나타나고, 그 너머 병풍처럼 산이 둘러싼 경치가 장관입니다. 수천 년 동안 저 평야는 수많은 전사의 피를 요구했던 곳입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다툼. 그래서 펠로폰네소스의 평야는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에 —피가 흥건합니다.

오르코메노스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모험입니다. 자칫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지름길로 접어들면 낭패를 봅니다.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도 평야 지역이라 걱정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잡초가 사람 키만큼 자라 도로가 없어지다시피한 구릉 지대를 지나는 건 —즐거운 경험은 아닙니다. 겨우 빠져나와 우물가에 차를 댑니다. 옆과 밑에서 쿵쾅거리며 지나온 흔적은 보닛에 남았습니다. 산비탈을 아슬아슬 돌아가는 유적으로 향하는 길. 킹콩 앞에 쪼그려 앉은 어린아이 같은 주차된 자동차.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6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6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새벽부터 고생한 현대 i10이 다소곳이 면벽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팁: 네비게이션의"지름길"을 믿지 마세요. 반드시 포장 도로(주요 도로)를 따라가세요. 비포장 구간이 나타나면 즉시 돌아가세요. SUV가 아닌 일반 승용차로는 정말 고생합니다.

오르코메노스 마을보다는 남쪽으로3-4킬로미터 떨어진 레비 디(Levidi)라는 마을에서 하루를 묵기 편리합니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여주인이 운영하는 펜션은 어머니의 손길같이 잘 정돈되어 있을 뿐 아니라, 소박한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멀리 사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그리움은 세계 공통이란 생각이 듭니다. 맞바람이 드는 아파트는 평야를 건너 온 바람으로 가득해, 마치 우리의 초가을 같습니다. 펜션에서 5분을 걸으면 마을 광장과 다양한 노천 식당이 손님을 맞이합니다.

유적 곳곳에서, 거의 예외 없이 아테나의 선물이라는 올리브 나무가 돌 벽을 뚫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7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7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고 모습을 유지하는 석축 일부가 남아 있고, 그 사이에서 올리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야생화가 피어 있습니다.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8
오르코메노스 — 산꼭대기 요새 도시, 스파르타에 맞선 시민들의 기록 사진 8

때로는 올라가고 또 내려가는 유적의 길은, 사람이 많지 않은 덕에 무척 평화로운 산책 길이 됩니다. 이 곳을 걷던 수천 년 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곳곳에 핀 야생화는 자신이 신이 머물던 자리에 핀 건지 알 턱이 없습니다. 옆에 누운 신전의 기초가 기억을 잃은 것과 같이.

Day 1

네메아(제우스 신전 +스타디움 +와이너리) →산길 드라이브 →오르코메노스유적 →레비디 마을 숙박(노천 식당 저녁)

Day 2

만티네아 유적 →트리폴리 →스파르타 방면 또는 올림피아 방면

Q: 일반 승용차로 갈 수 있나요?

Q: 일반 승용차로 갈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단, 주요 포장도로만 이용하세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비포장 지름길은 절대 따라가지 마세요. 잡초가 사람 키만큼 자란 구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Q: 네메아에서 당일 왕복이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네메아에서 40분. 하지만 레비 디 마을에서 1박 하면 소박한 그리스 시골 마을의 인정을 경험할 수 있어 추천합니다.

Q: 유적에 볼 것이 많나요?

솔직히 화려한 유적은 아닙니다. 아크로폴리스, 극장 터, 신전 기초, 성벽 정도. 하지만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아르카디아 평야의 풍경이 압도적이고, 인적 드문 유적을 혼자 걷는 경험이 특별합니다.

Q: 이 도시가 중요한 이유는?

펠로폰네소스의 전략적 병목. 스파르타 →아테네 이동 로를 통제하는 위치.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 그리고"왕에게 벌금을 매기고 집을 부순"스파르타 민주주의 일화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유적에서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권력은 시민 앞에 무릎을 꿇어야한다는 것. 스파르타에서는 왕도 잘못하면 50 억 벌금에 집까지 부서졌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 벌을 받아들이고 —승리로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이 것이 2,400년 전 그리스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둘째, 평야는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 평화로워 보이는 아르카디아의 평야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전사의 피를 요구했던 곳이었습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다툼. 아름다운 풍경 뒤에 —역사가 흥건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네비게이션을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 잡초 터널을 뚫고 나온 현대 i10의 보닛이 그 것을 증명합니다.

교장 선생님 펜션의 맞바람이 평야를 건너온다. 마치 우리의 초가을 같다. 직장 때문에 멀리 사는 아들 이야기를 하는 여주인. 어머니의 그리움은 세계 공통이다. 그리스의 산 속 작은 마을에서 한국의 어머니를 만났다.

•네메아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맨손으로 죽인 곳

•미케네 —아가멤논이 도끼에 맞아 죽은 왕궁

•아르고스 — 8,000년 동안 사람이 살아온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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