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잠에서 깨자 방의 참문을 통해 홍콩만의 여명이 보인다. 세계일주여행의 둘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크루즈여행이건 유럽자유여행이건 여행만 떠나면 나는 아침형, 아니 새벽형 인간으로 바뀐다. 새로운 곳의 설레임과 일출 전후의 빛을 감상하고 싶은 욕심때문이다. 어릴적부터 아침잠이 많았었는데…
나는 아직 자고 있는 M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옷을 입고 카메라를 챙겨 방을 나섰다. 로비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린 후 창 밖에 펼쳐지는 장관에 감탄한다. 붐비던 식당은 아침 식사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앉았던 창가 자리엔 열대의 뭉게 구름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정문을 나서 호텔을 둘러싼 바닷가 산책로에서 보니 드라마틱한 표정으로 홍콩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눈을 돌려 중국 본토 쪽 new territory라고 불리는 곳을 보았다. 멀리 해가 뜨는지 지평선이 붉다.
어제 배를 타고 건넜던 홍콩사이드의 고층건물의 거대한 유리 벽이 뜨는 해를 받아 붉게 타오른다.
구름이 마치 솜사탕처럼 풍성하게 피어오르고, 그 사이사이로 남국의 파란 하늘이 아름다웠다.
바다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을 싣고 셔틀보트가 쾌속으로 도심을 향하고, 산책로 한켠에선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아침 해를 받으며 체조를 하고 있었다.
출장와서는 본 적이 없는 홍콩의 구름. 하늘은 언제나 저런 모습이었을 터인데…
산책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기 앞서 뒤를 돌아보니 유리로 뒤덮인 두개의 고층 건물 사이 공간을 뭉게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 않는가. 대기는 습기를 머금은 채 서서히 더워지고 있었고 광장 한편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태극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3층 높이의 통유리창이 아름다운 로비층의 식당에서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건물 옥상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9시가 넘었고 기온도 수온도 흠잡을데 없었지만 몇 개의 풀에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비치타올을 가져다 파라솔 밑에 자리를 만들고 아침 운동겸 수영을 했다. 수영장의 끝에서 바라보는 홍콩만은 이제 한 낮의 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는데 구름은 하늘과 수영장을 채우며 아름다웠다.
홍콩의 명소인 옥시장 jade market을 구경하러 갔다. 오래 된 시장엔 한평 남짓한 공간을 차지한 수백개의 가게가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상당한 세월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 가게에는 중년 남자가 열심히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 연륜이 느껴지는 장부더미가 인상적이었다.
홍콩 사람들은 실속이 있기로 유명하다. 소박한 모습의 저 중년 남자도 주차장엔 메르세데스 S 클래스를 세워 놓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다.
시장의 다른 코너에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제법 모여 흥정이 한창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중국인들이 옥만큼 좋아하는 금을 거래하고 있었다.
좌판엔 크고작은 금 장신구가 가득하고 주변은 흥정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어린 시절 딱지놀이하던 모습이랄까… 나이 든 남자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페닌술라 호텔.
자타가 공인하는 홍콩 최고의 호텔이다. 이곳엔 쇼핑가도 유명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나와 아내도 호화로운 명품가를 구경했는데 아내는 엄지 손톱 만한 검은 돌이 박힌 반지를 기념품으로 샀다. 아케이드에서 외부로 나가는 계단은 매우 길고 화려했다. 출입구의 빛과 벨보이 그리고 기분좋게 계단을 내려가는 M을 한 장면에 담았다. 기념품을 얼마 후 잃어버릴 줄도 모르고…
우리는 만 하루의 짧은 홍콩체류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우리를 케이프타운까지 데려갈 비행기는 싱가폴 항공이다.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싱가폴 항공의 비즈니스 라운지는 천박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잘 꾸며져 있었다. 긴 야간 비행에 앞서 싱싱한 샐러드와 과일로 몸을 충전하며 아름다웠던 홍콩을 기억에 새긴다. 왜 홍콩을 한자로 ‘향기로운 항구’라고 쓰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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