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4시,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고, 온몸은 이불을 파고들고 싶어했지만, 아침 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이른 기상을 피할 수 없었다. 케이프타운의 부드러운 이불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렇게나 고역일 줄이야. 바깥은 차가운 바람이 쓸고 지나가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마저 피곤에 지친 내 귀를 자극하는 것 같았다.
택시를 이용해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공기는 상쾌했지만, 마음속은 긴장과 약간의 불안감으로 무거웠다. 새벽의 케이프타운 공항은 의외로 붐볐다.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는 항공편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비지니스 클래스를 예약한 덕에 체크인은 수월했다.
6시가 다가오자 비행기에 탑승했고, 이내 케이프타운을 떠나 요하네스버그로 향했다. 하늘은 밝아오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아직도 지난 밤 마신 와인의 향기로 나른함이 가득했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착륙한 순간부터, 이 여행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소란을 피우고, 대합실과 복도는 가방을 끌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혼란스러움이랄까. 그 순간 ‘북새통’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은 여행객들에게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많다고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그 긴장감은 차원이 달랐다. 보안 검색대 앞에서도 한바탕 혼란이 벌어졌다. 긴 줄을 따라 서 있었지만, 사람들은 새치기를 시도하거나 서로 언성을 높이며 순서를 다투고 있었다. 관리 요원들도 지쳐 보였고, 그 틈을 타 물건을 훔치려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전장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느낌의 여행은 아래 링크에서...
2018.08.21 - [유럽자유여행] - 크로아티아 여행 : 드론에서 본 황제의 도시, 스플리트
연결편 항공기에 올라 케냐로 향했다. 두시간 남짓 지났을까 기장이 안내방송을 통해 킬리만자로 산을 보여준단다. 항공기는 산 정상을 한바퀴 선회하면서 잊지못할 풍경을 보여주었다.
만년설이 덮여있었지만 이제는 온난화로 정상에만 눈이 남았다. 분화구는 마그마 분출을 잊은지 오래된 모습으로 구름에 안겨있었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다시 케냐를 향해 출발한다. 산 중턱의 험악한 지형이 한 때 만년설로 덮였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남아공 항공기의 날개가 보인다.
저기 어딘가에 킬리만자로의 눈의 주인공 Harry가 본 것이 이런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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