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파리의 마지막 투어가 끝나갈 때, 하늘은 불타는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태양은 저 멀리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 걸려, 마치 산이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그 장면은 내가 이제까지 본 어떤 광경보다도 웅장하고도 고요했다. 뜨거웠던 낮의 열기는 서서히 사그라지고, 그 자리에 부드러운 저녁의 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 코끼리 가족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미 코끼리는 커다란 귀를 느리게 흔들며 새끼를 부드럽게 밀어주고, 그 뒤를 따르는 작은 코끼리들은 서로 몸을 비비며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길러 온 하나의 생명체처럼, 코끼리 가족은 그들이 언제나 걸어왔을 길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의 사파리 차량들이 무전을 주고 받더니 한 곳으로 달려갔다. 차가 멈춘 곳에는 커다란 치타가 다섯마리나 있었다. 독립할 때가 가까운 네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신사임당' 치타 가족이었다. 한마리 살려내기도 어렵다던데...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의 여정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사자의 낮은 포효, 기린의 우아한 걸음, 그리고 수많은 작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것들이 이 순간에 녹아드는 듯했다. 킬리만자로의 산등성이에 걸린 붉은 태양, 그리고 코끼리 가족의 귀가길. 이 광경은 내가 이곳에서 겪은 모든 경험을 단순한 여행의 기억 이상으로 만들어주었다.
차가운 공기가 나를 감싸면서 사파리 지프는 천천히 캠프로 돌아가는 길을 잡았다. 나는 창문을 열고 저물어가는 황혼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 역시 코끼리 가족처럼 나의 길로 돌아가 바쁜 도시의 소음과 수많은 사람들 속에 머물겠지만, 오늘 본 이 풍경만큼은 그곳에서도 언제든 마음속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킬리만자로 산 위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붉은 석양처럼, 나의 마음속에도 그 빛이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임을 알았다.
호텔은 방갈로들이 늘어선 형태였는데 그 가운데 수영장까지 있어 낮동안의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야생 속에 문명이라니...
저녁 식사가 준비된 호텔에서는 마사이 족의 전통 춤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가 가득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끝없는 풍경을 마음속에 담으며, 호텔 정원에 만들어진 야외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야생에서는 보기드물게 고급스럽게 차려진 만찬 테이블 너머로 들려오는 북소리와 함께 마사이 전사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춤은 단순한 움직임 이상의 것, 마치 대지와 혼연일체가 된 듯한 몸짓이었다. 남자들은 길고 날씬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어깨를 펴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피부는 석양빛을 받아 붉은빛으로 빛났다. 그들이 입은 전통 의상, ‘슈카’는 붉은 색과 파란 색이 교차하며 대조를 이루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펄럭였다.
춤의 핵심은 ’아두무(Aduu)’라고 불리는 점프였다. 무리가 원형으로 서서 가운데로 한 명씩 나와 높이 뛰어오르는데, 그 높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이들은 발을 굽히거나 도움을 받지 않고 수직으로 뛰어오르며, 도약하는 순간마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듯 흔들렸다. 발이 땅에 닿을 때는 북소리가 울리며, 마치 그들의 도약과 대지의 호흡이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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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춤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마사이 족의 전통 속에서는 이러한 점프가 용맹함과 강인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로, 한 사람의 체력과 기력을 가늠하는 방식이었다. 춤추는 동안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서로의 리듬에 맞추어 소리치며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춤의 리듬이 점차 빨라지자, 나 또한 그 에너지에 휩싸이는 듯했다. 그들의 북소리는 가슴속 깊이 울렸고, 발걸음은 땅을 강하게 내리치며 대지와 이어지는 느낌을 전달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마치 그들이 보내는 자연의 소리에 동화된 듯, 사파리에서 마주했던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느꼈다. 저녁 공기는 신선했고, 호텔에서 제공된 만찬은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바비큐로 구운 고기와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아프리카 요리들, 그리고 향긋한 샴페인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지만, 나의 시선은 그저 마사이족 전사들에게 향했다. 그들이 춤추는 동안 그곳의 모든 것이 멈춘 듯, 대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안개가 숲속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아직 태양은 완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슴푸레한 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은은하게 숲을 물들였다. 풀잎들은 밤새 맺힌 이슬을 머금고 반짝였고, 새들은 고요한 숲을 깨우려는 듯 간간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 고요 속에서 혼자 걸어가던 나는 무언가 묵직한 소리를 들었다. 마치 땅을 두드리는 듯한 부드러운 진동. 어마어마한 크기의 숫코끼리였다. 거대한 존재가 풀숲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그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호텔 주변의 쇠울타리가 나와 코끼리 사이에 있어 무섭지는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는 철망을 짓밟고 내게 돌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코끼리는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부드러운 트렁크가 풀잎과 나뭇가지들을 감싸며 조용히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은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태연함이 느껴졌다. 그의 움직임은 강인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 고요한 힘과 평화로움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코끼리의 커다란 귀가 느리게 움직일 때마다 잎사귀가 흔들렸고, 그 거대한 몸은 숲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존재가 주는 고요함 속에 잠시 멈춰 섰다. 세상은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코끼리와 나, 그리고 숲의 속삭임이 있었다. 코끼리는 가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지만, 겁내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마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듯,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있었다.
이틀밤을 암보셀리에서 보낸 후 공항으로 이동했다. 넓은 벌판에 포장된 활주로가 생뚱맞다.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 준 프로펠러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우리는 떠날 준비가 되었다. 활주로 너머로 누 한마리가 태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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