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항구에서 선실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이제 마지막 기항지를 출발하니 여행은 막바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못내 아쉬운 여행의 뒷얘기를 안주 삼아 와인을 제법 마시고 식후에도 오픈 데크에서 몇 잔 더했다. 취기가 살짝 오른 상태에서 선실에 돌아오니 몬테네그로에서 샀던 와인 한병을 가져다 테이블에 예쁘게 세워 놓았다. 이제 공해 상으로 나가면 더 이상 기항지에 들르지 않으니 돌려주는 모양이다.
기쁜 마음에 일행의 방에 전화를 하니 그쪽 남편께서는 상당히 취해 더 이상 가동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우리 뿐이다.
코르크를 뽑자 마자 방안이 꽃밭이 된다. 무거운 바디 감의 와인은 따르는 느낌도 껼죽하다. 색은 정맥의 핏빛.
술도 어지간히 마셔보기도 했지만 와인 만큼 행복과 가까운 술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불쾌한 심정일 때에도 새로 연 와인에서 나는 풍요로움은 마음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세상을 좀 더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게 디오니소스가 널리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배도 부르고 전작도 있었지만 난 lady M과 Vranac 2008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가 마땅치 않아 룸서비스로 치즈를 시키니 10분도 안되 웨이터가 문을 두드린다. 놀다가 선실에 오면 자기 바빠 룸 서비스도 처음 시키는 것이었다.
카망베르, 브뤼, 그뤼에르 등 네가지 치즈, 그리고 포도와 마른 과일, 크래커.
처음 기세로는 한 병을 다 비울 것 같았지만 전작이 있는지라 아무리 맛난 와인이라도 남길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아깝다....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밤은 여느 밤과 다르지 않게 행복하고 쾌적하게 무르익어 갔다. 아쉬움을 남기며...
여명이 트기 전에 깨어 오픈 덱으로 나간다. 한 여름인데도 약간 서늘하다. 난 해가 밝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따라 와서 비치 의자에 길게 앉았다. 어느덧 멀리 베네치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출. 배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 신기할 것이 없어졌을 법도 한데 마지막 날이라서 인지 하늘빛이 유난히 곱다.
몇몇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심정인지 조용히 일출을 감상하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는 날.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일까.
해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다가 붉게 타오른다.
배는 뜨는 해를 왼쪽 뒤편에서 받으며 천천히 베니스의 복잡한 물길로 접어든다. 크루즈에서는 다가오는 풍경보다 멀어지는 풍경을 더 좋아하는데 이 아침은 더욱 특별하다.
어느새 배가 건물들이 복잡하게 밀집된 지역까지 들어왔다. 해도 이제는 제법 높이 떠오르고 아침 잠이 없는 갈매기 한마리가 날고 있다.
배 앞쪽을 보니 귀여운 파일럿 보트가 우리를 안내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이 정면에 보인다. 아마 물길은 빙 돌아서 산마르코 광장을 지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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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있었는지 짐작하기 힘든 수로 옆 구조물은 일정하게 총구를 내 놓을 수 있는 창이 있다. 아마 방어 요새가 아니었을까.
고개를 돌려 보니 맞은편에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과 쿠폴라가 마치 배의 일부인 것처럼 가깝게 보인다.
크루즈를 떠나기 전 묵었던 호텔 앞을 지나 항구로 들어간다. 거리는 아직 잠에 빠져 있다.
일주일 남짓 만에 다시 돌아온 산마르코 광장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곧 관광객과 곤돌라로 붐비게 될 베네치아의 운하 역시 아직은 잠결이다.
아름다운 운하 옆 건축 예술의 결정체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배는 흡사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속도로 아주 천천히 진행한다.
리알토 다리로 들어가는 그랜드 캐널을 지나간다. 이제 정말 다 왔다.
기어코 항구가 코 앞이다. 이제 오른쪽으로 꺽어 저 멀리 보이는 배 앞에 정박할 것이다. 아쉬움...
정박. 베니스 항이라고 쓴 간판 앞에 파일럿 보트가 돌아가고 있다.
출발하던 날 설레임의 크기만큼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허전함을 감내하며 우리는 다음 여정을 준비한다.
세상에는 보석이라는 별명이 붙은 관광지가 참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베니스는 왕관의 한 가운데 박힌 가장 큰 보석 crown jew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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