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는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 또 하늘이 맑을수록 잘 보인다. 결국 한 겨울에 극지방으로 가야한다는 뜻이다. 버킷리스트에서 한 줄을 줄인다는 의미로 추위를 각오하고 핀에어를 타고 헬싱키로 향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따뜻하고 싶어 출발을 2월로 잡았다. 헬싱키는 서울에서 9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겨울 비수기 때문인지 여름의 이코노미 가격에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행운까지 겹쳐 우리는 기분좋은 출발을 하였다.
긴 저녁식사와 영화 두편을 보고 좌석 스크린을 지도로 바꿔 보니 러시아를 지나고 있었다. 비행은 아무리 자리를 뉘어 편하게 있어도 여섯시간이 넘으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이제 두어시간 남짓이면 내리니 헬싱키는 유럽으로 가는 관문으로 제격이다.
헬싱키 국제공항은 Vantaa Airport라고 부른다. 공항이 있는 곳이 헬싱키 북쪽 내륙의 반타라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환승을 해 다른 곳까지 가는 눈치이다. 짐을 찾는 곳에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덕에 빨리 짐을 찾아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유럽에 도착해 또 다른 목적지까지 그날 이동하는 것은 20대 이후로 무리라 하루를 도착한 곳에서 자고 이튿날 떠난다.
겨울 해가 짧아 약간 어둑해지는 공항을 택시를 타고 빠져나와 시내로 달려갔다. 헬싱키는 겨울이 긴 탓인지 벽이 두터운 건물에 유리창은 작은 편이다. 북구의 날씨처럼 도시의 분위기도 차분하거나 쌀쌀맞게 느껴진다. 사람을 유혹하듯 개방적인 남부 유럽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헬싱키 중심가는 아름다운 길인 Esplanadi 주변이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이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호텔이었는데 길에서 보이는 간판은 호텔로 이어지는 터널 위에 차양처럼 둘러쳐 있었다.
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호텔 입구의 눈 쌓인 모습이 그 안의 따스한 모습과 대비를 이루어 아름다웠다. 호텔 내부도 호평이 무색치 않게 아늑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하루 밤을 묵고 떠나는 곳이라 실용적이기만 하면 더 사치스러울 필요는 없다. 헬싱키는 몇년전 다녀간 적이 있어 이번에는 경유지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배정된 객실도 북구의 미니멀 디자인에 맞게 심플하다. 그런데도 침대 옆에 놓은 근사한 나무 장식은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짐작하게 한다. 방은 약간 좁은 편이었지만 도심 한 복판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니었다.
창이 있는 긴 복도를 지나 만나는 식당은 작지만 아주 실용적이고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침 식사를 이곳에서 했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짐을 풀고 해가 남아있을 떄를 놓치지 않으려 산책을 나섰다. 밖은 영하 3도 겨울 왕국치고는 따뜻하다. 바다 쪽으로 걸어가니 바람이 조금 세지고 부두는 얼음으로 덮혀있었다. 놀이기구는 난방이 되는지 가동하는 것 같았는데 멀리 유명한 우스펜스키 대성당이 보이고 그 옆으로 시골집의 밥짓는 연기같은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쇼핑가를 향해 가는데 미술관 앞에 빨래줄이 걸려 있다.
다가가면서 보니 누군가의 설치미술이 그렇게 겨울바람을 맞고 있었다. 앙상한 나무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흰구름 까지 배경은 티셔츠들이 널린 빨래줄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체게바라는 왜 이 추운 겨울, 북유럽에서 저러고 있을까. 따뜻한 쿠바,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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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을 하면서 들어간 가게에는 겨울 실내 장식을 위한 용품을 팔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나 쓰는 오너먼트도 무척 다양하게 팔고 있었는데 이미 2월인 점을 감안하면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 같았다.
에스플라나디 거리에는 Runeberg 동상이 어두워지는 저녁하늘과 조명이 들어온 건물들을 배경으로 서있었다.
번화가 한구석에 있는 산타 가게에는 많은 오너먼트와 함께 다양한 크기의 산타클로스 인형을 팔고 있었다.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하고 한편 괴기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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