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코르출라의 새벽
[05:30 코르출라 마리나]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다. 오늘은 라스토보까지 약 25해리, 바람이 좋으면 4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이 해역은 예측이 어렵다. 일기예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북서풍 12~15노트, 파고 0.5~1미터. 나쁘지 않다.
[06:00 출항] 마리나 라인을 풀고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왔다. 코르출라의 중세 성벽이 아침 안개 속에서 점점 작아졌다. 메인세일을 올리고 제노아를 펼쳤다. 바람이 빔리치로 들어오자 배가 6.5노트로 안정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엔진을 끄니 오로지 바람과 파도 소리만 남았다.
[항해] 열린 바다 위에서
[08:00 외해 진입] 코르출라와 비스 사이의 열린 바다로 나왔다. 사방에 육지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약간의 긴장과 함께 묘한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나침반은 남남서를 가리키고 있었다. GPS에 라스토보 Ubli 항구의 웨이포인트가 찍혀 있었지만, 아직 수평선 너머에 숨어 있었다.
[09:30 라스토보 시야] 수평선 위로 흐릿한 산 그림자가 나타났다. 라스토보다. 가까워질수록 섬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뒤덮인 산등성이, 가파른 해안 절벽,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코브들. 다른 달마시아 섬들과는 확연히 다른 야생의 분위기가 풍겼다.
[입항] Ubli, 첫 번째 정박
[10:30 Ubli 항구 진입] 항구 입구의 좁은 수로로 들어섰다. 방파제 안쪽으로 들어서자 바람이 뚝 끊겼다. 거울 같은 수면에 주변 산이 비쳤다. 항구에는 페리 한 척과 어선 몇 척뿐이었다. 부두에 접안하자 노인 한 분이 줄을 받아주셨다. "Dobro dosli," 환영한다는 인사였다.
[11:00 항구 산책] 배를 정리하고 부두를 걸었다. Ubli는 작은 항구 마을이다. 슈퍼마켓 하나, 카페 두어 곳, 페리 매표소가 전부다. 하지만 그 소박함이 좋았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도, 호객 행위도 없었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항구를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라스토보에 왔구나.
[앵커링] Skrivena Luka의 고요
[14:00 Skrivena Luka로 이동] 점심 후 Ubli를 떠나 섬 남동쪽의 Skrivena Luka로 향했다. '숨겨진 항구'라는 이름답게, 좁은 입구를 지나야 비로소 안쪽의 넓은 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 언덕에서 소나무가 물가까지 내려와 있고, 수면은 유리처럼 고요했다.
[14:30 앵커 드롭] 수심 6미터, 모래 바닥에 앵커를 내렸다. 체인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울리고 나면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매미 소리와 물결이 선체를 때리는 소리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완벽한 온도. 수중 마스크를 쓰고 바닥을 들여다보니 작은 물고기 떼가 앵커 체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밤] 은하수가 쏟아지다
[21:00 해 진 후] 석양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라스토보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다. 크로아티아 유일의 다크 스카이 파크로 지정된 이유를 몸으로 느꼈다. 코크핏에 베개를 놓고 누웠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22:00 은하수]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밀도의 별이 쏟아졌다. 유성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하나. 마스트 꼭대기 위로 별이 천천히 회전하는 것 같았다. 잔잔한 수면 위로 별빛이 반사되어, 배가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23:30 잠들며] 이불을 끌어올리고 별을 보며 잠이 들었다. 코르출라를 떠난 지 불과 열여덟 시간. 하지만 그 사이에 경험한 것들은 일주일치의 감동이었다. 라스토보는 단순히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상이었다. 열린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온 세일러에게 주어지는, 아드리아해의 가장 은밀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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