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여느 그리스의 여름날과 다름없이 햇볕이 뜨거웠다.
화산 폭발로 섬의 가운데가 바닷속으로 잠긴 산토리니. 전설 속 아틀란티스가 이곳이었을까?
아직도 섬 주위에 뚜렷한 대침강의 흔적.
고대 티라 Thera 유적으로 가는 산길은 차도 오르기가 힘겹다. 포장이 끝나고 산길은 이제 차가 갈 수 없게 좁고 가파르다.
길가에 차를 대고 차문을 여는 순간, 강풍이 불어 문이 떨어져 나갈듯 제쳐진다. 북풍의 신, 보레아스 Boreas가 인사를 건넨다. 테세우스를 태운 아테네의 배를 크레타까지 데려간 계절풍 멜테미 Meltemy는 에어콘을 틀어도 뜨거운 태양때문에 땀으로 젖은 티셔츠를 금새 말려준다.
산을 오르는데 산 것은 인간 뿐이다. 보레아스의 심술에 모자가 날아갈까 잡아가며 메마른 땅을 오르다. 메마른 대지를 닮은 메마른 작은 교회는 2천년된 것이다. 바람과 등산에 지친 아내가 포기한다.
거친 교회 벽 그늘에 기댄 파트너를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포기했어야 했을까?" 편치 못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3500년 묵은 유령들의 꼬드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고대 티라 유적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길은 90도 오른쪽으로 꺽이며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어느 정도 오르다 남겨 두고 온 사람이 있을 곳을 보려 돌아섰다. 그리고 펼쳐진 풍경.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듯 하얗게 뜨거운 포석과 절벽 아래 저 멀리 펼쳐진 에게해의 푸른 물결. 내 몸을 쉴 사이없이 흔드는 강력한 계절풍에 앞서가는 여인의 긴 머리카락이 미칠듯이 흩날리던 오후의 기억이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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