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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4

크로아티아 스톤의 역사와 문화 — 소금을 지키기 위해 쌓은 5.5km의 성벽 HISTORY · CULTURE 크로아티아 스톤의 역사와 문화 소금을 지키기 위해 쌓은 5.5km의 성벽 라구사 공화국의 전략적 요새, 600년 염전, 유럽의 만리장성이 된 이유 산 위 요새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 크로아티아 국기가 펄럭이고, 멀리 아드리아해가 보인다 왜 이 작은 마을에 5.5km나 되는 거대한 성벽이 있을까? 답은 하나, 소금이다. 중세 시대 소금은 금만큼 귀중했고, 스톤의 염전은 지중해 최대 규모였다. 이 소금을 지키기 위해 라구사 공화국은 14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긴 성벽을 쌓았다. 스톤(Ston)의 역사는 소금과 성벽, 그리고 이 둘을 지키려 한 공화국의 이야기다. 라구사 공화국과 소금 1333년, 라구사 공화국(오늘날의 두브로브니크)은 펠.. 2026. 9. 1.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문화 — 라구사 공화국에서 킹스랜딩까지 HISTORY · CULTURE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와 문화 라구사 공화국에서 킹스랜딩까지 1,400년 역사의 해양 공화국, 전쟁의 상흔, 그리고 부활한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성벽 — 2km에 달하는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종탑이 하늘을 찌른다 오늘날 두브로브니크의 주황빛 지붕은 아름답지만, 이 색에는 비극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몬테네그로군의 포격으로 구시가지 건물의 68%가 파괴되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새 지붕(밝은 주황)과 옛 지붕(어두운 갈색)의 색 차이는 전쟁과 복원의 기록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영광, 파괴, 그리고 부활의 이야기다. 라구사 — 7세기의 시작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7세.. 2026. 8. 25.
크로아티아 코르출라의 역사와 문화 — 마르코 폴로가 태어난 돌의 도시 HISTORY · CULTURE 코르출라의 역사와 문화 마르코 폴로가 태어난 돌의 도시 3,00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아드리아해의 작은 반도 바다에서 바라본 코르출라 — 성 마르코 대성당의 종탑이 3,000년 역사 위에 서 있다 바다에서 코르출라를 처음 보는 순간, 이 도시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라는 걸 직감하게 된다. 그리스인들이 '검은 코르키라(Korkyra Melaina)'라 부르던 시절부터, 로마, 비잔틴, 베네치아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 코르출라의 돌벽 하나하나에는 3,000년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고대 — 검은 코르키라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크니도스(Cnidus) 식민자들이 이 섬에 도착했다. 울창한 숲이 .. 2026. 8. 16.
미국 & 이스라엘 대 이란 전쟁: 역사 앞에 오만한 자들 마사다의 후예들은기억하지 못했다960명의 자결을 가진 민족이 잊은 것────────────────────────────────────────기원후 73년, 유대 사막.로마 제10군단 6,000명이 사해(死海) 옆 절벽 위의 요새를 포위했다. 요새의 이름은 마사다(Masada) —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다. 그 안에는 960명의 유대인이 있었다.예루살렘은 이미 3년 전에 함락됐다. 성전은 불탔다. 하지만 마사다의 유대인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3년을 버텼다. 로마군은 4km에 달하는 포위벽을 쌓고, 600m 길이의 거대한 경사로를 건설해 요새 위까지 공성탑을 끌어올려야 했다. 세계 최강 로마 제국이 960명을 제압하는 데 수개월의 토목공사가 필요했다.그리고 서기 73년 4월 16일, 로마군이 마침내 성..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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