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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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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정보] 그리스의 신석기 시대 풍경 보통 '고대 그리스'라고 부르는 것은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되어 아르카익 시대, 고전 시대, 헬레니즘 시대, 로마 시대를 거쳐 기원 후 7세기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 신석기 시대의 그리스 (기원전 6800 - 3200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는 기원전 8000년 경에 끝이 났다. 기후가 좀 더 견딜만한 것으로 바뀌자 떠돌아 다니던 인간은 안정된 기후 덕에 정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냥과 채집 생활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활동이어서 연명할 정도에 그쳤지만,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인간은 굶주림에서 탈피하였고 남는 농산물까지 가지게 되었다. 잉여 농산물은 물물교환의 형태로 다른 재화와 교환되어 사회는 분화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위 지도의 + 로 표시..
[그리스여행 정보]스파르타의 팽창과 헬로이타이 탄생: 메세니아 정복 뤼쿠르고스Lycurgus의 개혁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스파르타는 메세니아 Messenia, 아르카디아 Arcadia, 아르골리스 Argolis 순으로 주변국가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첫 정복 전쟁인 메세니아 정벌이 가장 격렬했다. 두차례의 전쟁 중 첫번째는 기원전 743년 부터 724년까지 19년이나 걸렸는데 시작은 메세니아 청년들이 스파르타 처녀를 납치해 간 사건때문이었지만 사실 스파르타는 오랫동안 메세니아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려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때문에 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트로이, 메세네 등...메세니아 사람들은 용맹했지만 스파르타엔 비할 바가 못되어 연전연패 산꼭대기 마을인 이토메 Ithome까지 밀려났다. 메세네의 유적..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시민의 삶 스파르타는 기원전 14세기 경 도리아인이 유럽의 북쪽에서 침입, 점령하고 지배했다. 그 과정에서 스파르타에 사는 사람은 세 계급으로 나뉘어졌다. 제1계급인 시민은 '호모로이'라고 부르는데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계급이다. 모두 군인으로 60세까지 복무하였다. 제2계급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페리오이코스'라고 불리는 계급으로 땅도 소유할 수 있고 군대에도 참여하여 육군에서 홉라이트 hoplites, 해군에선 에피바스테스 epibastes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상당한 자유를 누린 이 계급은 몰락한 도리아 족이나 도리아 인에게 크게 저항하지 않은 아카이아 인으로 구성되었다. 제3계급은 헬리오테스 또는 헬로이타이 Helots 계급이다. 이들은 노예 계급으로 스파르타 경제를 유지하는 농장등에서 일하는 ..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교육시스템: 니들이 스파르타를 알아? 요즘은 거의 사용조차 하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에는 혹독한 훈련을 일컬어 스파르타 식 교육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고대 스파르타 사람들의 교육과 훈련에 비하면 요즘의 어지간히 독한 훈련도 스파르타 식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없다. 우선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아이를 스파르타의 원로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아이에게 이상이 없으면 부모에게 돌려주어 키우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로 산에 버려진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일곱살이 될 때까지 자라는데 Homer의 오딧세이와 일리아드 이야기를 포함한 그리스 영웅담과 전설을 배운다.일곱살이 되면 아이는 부모 슬하를 떠나 공립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소년들은 선배들에 의해 군사훈련을 받고 소녀들은 가사일과 군사 훈련을 함께 ..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의 정치시스템과 독특한 풍습 스파르타는 다른 어느 그리스 도시국가들과도 다른 독특한 풍습과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다른 도시가 민주주의를 채택한 뒤에도 왕정을 유지했다. 게다가 왕이 두명이었다.도리아 인과 함께 돌아와 펠로폰네소스를 정복한 헤라클레스의 후손 중에 아리스토데무스는 코린트 해협을 건너기 전에 나우팍토스에서 죽는다. 그에게는 쌍동이 아들 프로클레스와 에우뤼스테네스가 있었는데 두명이 동시에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전통으로 굳어져 두명의 왕을 갖게되었다. 민회는 아펠라Apella라고 부르는데 18세 이상의 스파르타 시민으로 구성한다. 한편, 두명의 왕은 민회에서 선출된 28명의 60세 이상 종신 원로들과 합친 30명으로 로마의 원로원과 유사한 게루시아Gerusia를 구성한다. 민회는 스파르타를 구성하는 ..
[유럽여행계획] 비용을 절약하는 유럽자유여행 루트 10회- 스톡홀름, 코펜하겐, 베르겐, 트롬쇠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북유럽의 강호였습니다. 덴마크와 패권을 다투던 시절 러시아는 촌구석에 지나지 않았죠. 감라스텐 지역의 중세 광장은 밤에 특히 아름답지만 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코펜하겐은 덴마크의 수도입니다. nyhavn이라는 이 부두는 코펜하겐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이 뱃길의 양편에는 모두 카페, 식당입니다. 코펜하겐의 쇼핑 중심가 모습 코펜하겐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놀이공원인 티볼리 파크가 있습니다. 베르겐은 송네 피요르드 여행의 시작점으로 적당합니다. 구드방겐까지 가면 거기서 배로 플롬까지 피요르트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사실 베르겐은 중세 한자무역동맹의 중심도시 였습니다. 이 앞바다에서 넬슨제독이 전투를 벌인 적도 있다고 하지요. 창고로 쓰이던 수많은 목재건물을 살려 지금은 ..
[그리스여행 정보] 스파르타 근간을 세운 뤼쿠르구스 도리아 인이 남진하면서 펠로폰네소스를 정복한 초기엔 아르고스가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하지만 뤼쿠르구스 Lycurgus의 개혁 이후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를 넘어 전 그리스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게 된다.뤼쿠르구스는 스파르타의 왕 에우노무스Eunomus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그의 형 폴뤼덱테스Polydectes가 왕이 되었는데 그 마저도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다. 그런데 임신 중이던 형수가 뤼쿠르구스에게 접근하여 적통인 아이를 제거하고 둘이 권력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악녀! 뤼쿠르구스는 이에 응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다가 아들이 태어나자 '민중의 기쁨'이란 뜻의 카릴라오스Charilaus로 이름짓고 스파르타의 군중에게 '미래의 왕'이라고 선언한 후, 초연히 스파르타를 떠나 오..
[그리스여행 정보] 헤라클레스 후손, 펠로폰네소스를 점령하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영웅시대를 대표하는 반신이다. 그는 네메아의 사자를 때려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12가지의 과업을 수행하였는데 아르고스 근방에 위치한 티륀스의 왕 에우뤼스테우스Eurystheus가 가족을 몰살시킨 헤라클레스의 죄를 씻기 위해 부여한 것들이었다. 과업을 완수한 후 행복하게 살것으로 생각되었던 헤라클레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되면서 그의 후손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도망자처럼 옮겨다니며 구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계속 티륀스로 돌아가려 시도했지만 번번히 축출당했다. 그런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남진하는 도리아 인과 연합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헤라클레스의 후손이 리드하는 도리아 인들은 기원전 1200년 경부터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우팍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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