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센 탓인지 어제 밤에는 침대를 흔드는 배의 진동이 약간 더 미세하고 가끔은 작은 돌이 있는 황톳길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 버릇처럼 발코니로 나오니 세척의 크루즈 배가 1km 정도 간격을 두고 일렬로 달리고 있다. 우리 앞의 배가 90도 우회전하더니 로도스로 입항한다. 고대의 영광과 중세의 오랜 고통이 어우러진 섬.
혼자 왔던 곳을 둘이 다시 오다.
학회 때문에 혼자 왔던 아침. 산책을 하다 크루즈 쉽을 난생 처음 보았다. 아주 천천히 입항하는 배의 발코니에서 섬 풍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눈물나게 부러웠었다. 그때 남긴 사진은 지금 봐도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옆에 정박한 크루즈 쉽 뒤로 훗날 몰타로 쫓겨 간 로도스 기사단의 성벽이 보이고 멀리 언덕 위엔 무너진 그리스 시대의 아폴로 신전이 기둥만 앙상하다.
2500년 전 지중해 최대 무역항은 지금은 소박한 marina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Colossus의 다리가 있던 곳에는 양인지 염소인지 모를 조각상 두 개만이 영광을 기리고 서있다.
성벽 안으로 들어와 보니 그리스 정교회 십자가 뒤로 우리가 타고 온 배가 보인다.
교회 기둥은 요한 기사단 (로도스 기사단의 다른 이름)의 본거지였음을 입증하듯 수호성인이 된 기사들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오전은 배에서 현지 관광 프로그램으로 예약한 호텔 리조트에서 보냈다.
처음 들어가 본 에게해는 과연 최고였고 비치파라솔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배에서 보던 것과 또 다른 낭만이 있다.
로도스 항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아폴로 신전 터에 오르니 전차경주를 했을 법한 경기장까지 있다. 로도스가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 로드의 자식이란 신화가 있으니 이 섬에서 헬리오스의 후계자 아폴로를 섬긴 건 당연하다.
신전 뒤편으로 멀리 터키 땅이 보이고 그 사이엔 두 대의 세일 보트가 떠 있다.
고대의 흔적을 뒤로 하고 성으로 내려오다 돌아 본 낡은 길은 한가하고 햇살이 따가웠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젊은 카이사르도 이 길을 걸었을까?
200년 동안 이슬람 침공을 막아 낸 로도스의 성벽. 곳곳에 포탄 더미가 과거를 말해준다
무너진 성벽. 1522년 함락의 비극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 하늘엔 무심한 매 두 마리. 로도스 기사단이 ‘몰타의 매’가 되었다던데.
성벽 안의 번화가로 이어지는 길에는 엄청나게 큰 나무들의 푸르름이 햇살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나가다 옆을 보면 좁은 골목의 끝에 정원이 있는 카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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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우린 더위를 식히며 Greek salad와 수블라키를 먹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샐러드의 시원하고 새콤한 맛.
출항하는데 요트들이 환송을 한다. 다시와도 또 오고 싶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로도스.
이제 멀어진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쇼핑 아케이드에서 아라비안 나이트 세일 행사가 진행 중이다.
항상 저녁엔 기항지의 특산물을 파는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오늘은 더 특별하다.
lady M에게 나보다 크고, 하얗고, 게다가 젊기까지 한 사내가 접근한다.
모두 즐겁게 한 컷!
오늘 밤엔 잔디밭에도 full band가 자리를 잡았다.
외롭게 다녀갔던 로도스에 나름의 복수를 한 걸 기념하며 난 론 강이 흐르던 아비뇽이 생각나 Chateauneuf de Pape를 한 병 시켰다.
곳곳에 커플들로 아름다운
에게해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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