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에서의 사흘 여정을 마치고 차를 렌트해 북쪽으로, 추억이 서린 캠퍼스를 찾아 떠난다. 실로 얼마만인가?
떠나는 길에 우리는 그랜드센트럴과 호텔 사이에 있는 커다란 해산물 마켓에서 피크닉 준비를 했다. 유럽여행 가이드는 럽스터 꼬리 샐러드로 도시락을 만들었다. 정말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가재 꼬리만 열개는 먹었다. M은 새우와 빵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바게트 등을 샀다.
북쪽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눈 쌓인 경치를 보니 왜 사람들이 뉴욕을 아름답다고 하는지 납득이 갔다. 살 때는 몰랐는데.
도착한 캠퍼스는 그리운 모습 그대로 이다.
학교는 겨울방학 중이라 한산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 브레이크! 학생회관에 있는 교내 서점에서 기념 티셔츠라도 살까 가는 길에 애용하던 ATM 머신을 지나간다. 언제나 20달러만 인출하던...
교내서점도 이미 닫았다. 오는 길에 들른 우드버리 아울렛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썼나보다.
[해외여행 비법노트] - 명품 아울렛 - 미국 뉴욕 맨하탄 근방 우드버리 프리미엄 아울렛
텅텅 빈 학생회관을 보니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8월의 여름방학 중이어서 학생이 거의 없어 택시로 아파트에 도착한 후엔 어디를 갈 수도 없었다. 저녁인지 점심인지 식사를 위해 난 기혼 학생 아파트에서 이곳까지 피자 한판 사겠다고 땡볕에 20분을 걸어 왔었다.
캠퍼스를 돌아다녀 본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곤 했던 길이 눈 속에 한가하다.
책 무게 때문에 언덕 밑으로 조금씩 밀려 내려간다는 루머의 도서관과 전산소로 쓰이는 고풍스런 건물도 정적에 싸여있었다.
친구들과 잡담을 하던 도서관 카페 유리창에 그들의 모습이 비친다.
짧은 방문을 마치고 떠난다. 20대의 나와 M을 이곳에 남겨두고.
sunset terrace란 이름처럼 석양이 언덕 아래 펼쳐지는 평원을 물들이는 풍경이 장관이던 '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갔다.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고마웠다.
방학이라 한가한 여름 날이면 가끔 친구들과 모여 바베큐를 하던 집 앞의 놀이터 겸 공원도 눈에 덮힌채 옛 모습 그대로다. 낙엽이 쌓인 가을날 M이 우리의 첫 아이를 안고 앉아 있던 고목에 매단 그네가 반갑다.
홈, 스위트 홈!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집.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적성에 맞지 않던 아래 층 미국 학생 부부는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일요일마다 아침에 신문을 사러 오던 가게는 이제 피자집이 되었고, 친구들과 몰려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버팔로 윙을 먹던 펍도 사라졌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밤새워 일하던 연구소에 어둠이 내렸다. 수도 없이 오르내린 저 계단.
10웗부터 이듬 해 4월까지 눈이 내리는 춥고, 오락거리도 없는 이곳에서 4년 넘게 한국도 한번 안가고 살았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모두 가난한 학생들이었기에, 모두 꿈을 먹고 사는 나이였으니까 견딜 수 있었던 것이겠지.
호텔 스포츠 바에서 식사. 옛 생각에 시킨 버팔로 윙은 점보 닭으로 만들어 살만 피둥거리는게 윙이 드럼스틱같다. 다 버린다. M은 그녀답지 않게 로칼 맥주 한 파인트를 호기롭게 마시고는 취기가 도는지 유난히 수선스럽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스피커를 만지작거리다 기어코 엎어뜨리고는 당황한다.
당신도 옛 생각에 들떠있나?
힐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소박했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젊은 시절과 작별한다.
캠퍼스를 떠나며 그곳이 제법 멀어질 때까지 우린 말이 없었다. 달콤하면서도 어쩐지 가슴 한켠이 쌉싸름한 추억을 음미하느라...
그리고 이제 길을 되짚어 휘황찬란한 도심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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