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해의 거친 바람에 사로잡혀 안드로스 섬 Batsi 마을에 발이 묶인지 나흘이나 흘러갔다. 일기 예보는 만만치 않은 상황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다의 상태를 살피며 출항 준비를 했지만 바람은 계속 거세게 불어 항구 안까지 파도가 부서지는 포말이 생기고 있었다.
오전 11시 경, 바람이 약간 누르러졌다. 우리는 부두에 매어 둔 밧줄을 폴고 닻을 걷어 올리고 뜻하지 않게 정이 든 항구를 떠났다. 목표는 서쪽의 케아 Kea 섬.
안드로스 섬을 떠나 케아 섬을 향한 항해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출항을 준비하며 하늘을 바라보니, 이미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고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마음은 이미 바다를 향해 있었다. 항구를 엔진으로 벗어 난 후 20노트 바람에 맞게 두 세일을 reefing 하고 항해를 지속했지만 거센 바람은 쉴사이 없이 세일보트를 휘감아 흔들었다. 뱃머리를 앞으로 밀어내려는 힘과 거친 파도에 맞서며 균형을 잡아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넓은 바다로 나갈수록 바람은 더욱 강해졌고, 파도는 점점 높아졌다. 에게해의 바다는 마치 거대한 생명체처럼 세일보트를 밀어내려는 듯했다. 돛이 휘날리며 파도 위에서 흔들릴 때마다 스키퍼인 나나 크루모두 재미와 함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선체가 기울어질 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갔고, 물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바다 위에서, 바람과 파도는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이따금씩 돌풍이 불어오면 main sheet를 풀며 배가 바람방향으로 급격히 기우는 것을 방지하며 항해를 계속했다. 어려운 상황은 삼각파도의 가운데에 배가 놓이는 경우였다. 배 바닥의 keel이 전복을 막아 준다는 사실이 있기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지 일반적인 모터보트였으면 몇 번이고 전복되고 말았을 것이다. 세시간이 넘도록 항해를 해도 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무한히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중간에 코스를 잘못 설정해 수정하느라 30분을 손해를 보았다. 케아 섬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배의 고물 stern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가 조종을 힘들게 했지만 아주 유익한 실전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험난함 속에서도 바람과 물결에 맞서 나아가는 우리의 작은 세일보트는 꿋꿋했다. 한 번의 파도를 넘을 때마다 작은 승리감이 밀려왔고, 거센 바람이 배의 돛을 때릴 때마다 더 강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4시간 가량의 항해 끝에 마침내 케아 섬의 윤곽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거친 파도와 바람에 지친 몸과 마음이었지만, 눈앞에 섬이 다가오는 순간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바람은 거세게 몰아쳤지만, 세일보트는 고집스럽게 항로를 유지했다. 항구가 있는 만에 접어들자 주변의 바람이 언제 그랬냐는듯 잦아들었고, 거친 바다와의 싸움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침내 케아 섬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 온몸이 땀과 바닷물로 젖어 있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이겨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바다의 험난함과 바람의 강인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안드로스에서 케아까지의 항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스스로와 자연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날의 거센 바람과 파도를 기억하며, 세일보트의 모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항해 내용을 기록하는 장치가 logbook이다. 아래 그림이 그 날 안드로스에서 왼편의 케아로 가는 경로와 그 당시의 바람 세기를 나타내는데 색이 어두울수록 바람이 세다. 붉은 색은 20-24노트의 바람을 뜻한다.
이번 항해 중에서 가장 거친 바람을 맞았던 하루였다.
세일링이 거칠수록 끝난 후의 행복감은 더 커진다. 항구에 배를 묶어 두고 30분을 걸어 더욱 조용한 만을 찾았다. 몇 년 전 혼자 왔던 식당이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항구 밖의 거센 파도가 어느 나라의 얘기냐는 듯 바다는 호수보다 잔잔하고 우리는 석양, 음식, 와인으로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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