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아테네35

세일링 요트 유럽여행 가이드 - 그리스 아테네, 마라톤 동영상을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세요. https://youtu.be/yuI9UeCQNbs 2021. 6. 14.
그리스 여행지 - 마라톤 전투를 치른 해안 풍경 기원전 500년 경이니까 지금부터 거의 2500년 전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는 변방에서 자꾸 심기를 건드리는 아테네를 침공한다. 아테네의 망명자 히피아스를 앞잡이로 수백척의 전함이 도착한 마라톤 만. 주변의 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2500년의 세월만큼이나 전쟁과 큰 차이가 있다. 해변은 십만대군이 상륙하기에 충분할 만큼 길고 평탄하다. 수많은 용사들의 무덤이 되기에도 충분히 넓은 그곳에 지금은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내륙으로 발길을 돌리면 작은 언덕 옆, 조용한 아우성이 들린다. 수만명의 페르시아 군사가 전사한 싸움에서 아테네는 200명도 되지 않는 전사자를 내었다. 2021. 3. 17.
밀티아데스는 누구인가?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테네 장군 밀티아데스는 누구인가?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테네 장군tourinfo.org · 고대 그리스 역사 깊이 읽기밀티아데스(Miltiades, 약 BC 550~489)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군의 승리를 이끈 장군입니다. 당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받았지만,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군의 전술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수적으로 불리했던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그러나 그의 삶은 영웅의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라톤 승리 불과 1년 뒤 파로스 원정에 실패해 재판을 받고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부상이 악화되어 죽었습니다.이 글에서는 밀티아데스가 누구였는지부터 마라톤 전투의 전략, 승리 이후 몰락까지 살펴봅니다.항목내용이름밀티아데스(Miltiades)생몰약 BC 550.. 2019. 5. 7.
아드리아해 크루즈 단골 기항지 코르푸의 2400년 전 이야기 2400년 전에 이미 코르퀴라 Corcyra (요즘의 코르푸)는 아드리아해의 강력한 해군 도시국가였다. 번영을 구가하던 이 아름다운 도시국가는 코린트와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잘 사는 나라이기는 해도 코르푸는 당시 최고의 해군을 가진 코린트의 적수가 되기는 힘들었다. 멸망의 위기에 몰린 이들은 코린트와 앙숙관계인 아테네에 구원을 요청하기로 한다.녹음이 우거지고 바다색이 고운 코르푸는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와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두차례 전쟁에서 이겨 에게해의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참조: 2018/09/19 - [나의 샹그릴라! 그리스!/신화와 역사] -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아테네 점령 2018/09/18 - [분류 전체보.. 2018. 11. 26.
흥하는 나라, 망하는 나라 - 아테네의 교훈 요즘 사람들은 최첨단 과학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2천년 정도 전에 살던 사람들은 크로마뇽인이나 네안데르탈인 같은 원시인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2천년 전에 살던 사람들보다 현재의 인간은 퇴보했으면 했지 진화하지는 않았다. 몇년 전부터 그리스는 유로존의 골치덩이로 등장했다. 과도한 부채와 방만한 정부의 경제운영때문에 부실에 부실이 쌓여 파산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의 수혈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그리스는 통합된 유로존을 볼모로 잡고 못된 짓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스 경제위기를 분석한 기사를 읽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스 연금제도가 너무 방만하게 운영되어 경제파탄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용사 예를 들었다. 연금에는 위험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조기은퇴.. 2018. 10. 27.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살라미스 해전 | 그리스 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살라미스 해전 | 그리스 여행 정보 여행자신들의 고향을 유린당한 아테네 인들의 슬픔과 분노는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행동때문에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었퇴각 결정.스파르타를 포함한 펠로폰네소스의 그리스 도시 국가가 내린 결정을 보고 테미스토클레스는 위험한 모험을 하기로 한다.시키누스 Sicinnus는 페르시아 출신으로 전쟁 포로가 되어 테미스토클레스의 노예가 되었다. 아마도 상당한 지식인이었던듯 테미스토클레스는 시키누스를 자기 자식들의 가정교사로 삼았다. 그런 은혜를 입었으니 시키누스의 충성심은 각별할수 밖에 없었다.테미스토클레스는 시키누스에게 편지 한 통을 주어 크세르크세스에게 전하도록한다.[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살라미스 해전 사진 1"대왕이시여. .. 2018. 9. 19.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