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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토스는 이오니아 지방의 유력한 그리스 도시국가였다. 기원전 500년 경 이곳은 참주 tyrant라고 부르는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으며 강력한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밀레토스의 원형극장은 고대의 영화를 짐작하게 해 주고 있다. 

Archaeology Illustrated에서 복원한 밀레토스의 고대 도시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리스타고라스 Aristagoras는 아버지가 참주를 지낸 밀레토스의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처남 (일부에선 장인이라고도 함)인 히스티아이우스 Histiaeus의 후임으로 참주가 되었다. 원래 히스티아이우스는 페르시아의 지지를 받던 참주였으나 페르시아 왕의 의심을 사게 되어 페르시아 도시인 '수사'에 억류되었고 아리스타고라스는 처남이 돌아올 때까지 임시 참주로 임명되었다. 

한편 에게해 중앙의 낙소스 섬은 원래 귀족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이즈음 민주정이 들어서면서 귀족들을 추방해 버렸다. 

추방된 귀족들은 자신들의 세력기반을 잃자  밀레토스로 찾아가 참주 아리스타고라스 Aristagoras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잘만 하면 임시직인 밀레토스 참주직을 때려치우고 부유한 낙소스의 정식 참주가 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아리스타고라스는 이들을 돕기로 한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리디아의 페르시아 총독 아르타페르네스 Artaphernes의 막강한 군대를 이용하는 계책을 세우고 낙소스 귀족들에게 받은 뇌물을 전하며 설득에 성공한다. 그리스 인들 사이의 민주정과 과두정 다툼에 기어코 외세를 끌어들이는 우를 범한 것이다. 

총독의 보고를 받은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는 200척의 함선과 페르시아 육군을 파견했다. 그의 속셈은 그리스인 귀족들을 앞세워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낙소스를 점령하면 그와 십여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는 파로스 섬은 물론 안드로스 섬 등을 점령하여 그리스 본토까지 집어 삼키려는 것이었다. 

침략군은 다리우스 1세의 사촌인 메가바테스 Megabates 장군이 맡았다. 한편 낙소스 섬에서는 페르시아의 침공이 임박하자 성채가 가장 튼튼한 낙소스 시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어태세를 갖추었고 기원전 499년의 4개월 동안 공격을 막아냈다. 

농성을 하는 쪽 식량이 먼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낙소스 사람들이 철저히 준비한 덕에 공격하는 페르시아 군의 보급품이 먼저 떨어져 철수하고 만다. 지금의 낙소스는 2500년 전의 전쟁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이 아름다운 섬이다.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를 후원한 밀레토스 역시 전쟁비용을 보상받을 길이 없어져 시민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위기를 느낀 아리스타고라스는 이번에는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한다. 이즈음 수사에 있던 전임 참주 히스티아이우스에게서 노예 한명이 도착했다. 노예는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고 문신으로 새긴 메세지를 보여주었다. 메세지는 반란을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이 메세지를 받고 아리스타고라스는 고무되었지만 사실 히스테아이우스는 아리스타고라스가 반란을 일으키면 페르시아 왕이 자신에게 반란 진압을 명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반란을 일으키라는 것은 그가 판 함정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은 모르는 아리스타고라스는 우선 참주 자리에서 물러나며 모든 시민이 평등한 민주제를 채택한다고 선포해 민심을 얻는다. 이런 밀레토스의 변혁은 주변 지역으로 퍼져 사모스, 키오스 등 주요 도시를 지배하던 참주들이 모두 권력을 잃고 페르시아로 망명한다. 이오니아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이방인인 페르시아의 지배에 근본적인 적대감을 갖고 있던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인들은 아리스타고라스의 혁명에 열광하며 페르시아를 이오니아에서 축출하려고 했다. 한편 페르시아의 응징이 두려운 아리스타고라스는 그리스 본토의 도움을 받기 위해 스파르타와 아르고스 등을 찾았으나 모두 거절당한다. 

마지막으로 찾은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는 같은 이오니아 인이라는 인종적 인연과 에게해를 주요 활동무대로 살아간다는 배경때문에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25척의 전함을 보낸다. 

에페소스에서 아테네 군대와 합류한 밀레토스 군대는 총독이 있는 사르디스를 거의 점령하지만 페르시아 지원군이 도착하자 패주하고 만다. 

무시무시한 페르시아의 보복이 계속되자 이오니아 지방의 반란도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아리스타고라스는 트라케 지방으로 물러나 후일 암피폴리스가 될 곳에 정착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곳의 트라키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에 반발해 전투가 벌어졌고 아리스타고라스는 전사하고 만다.

임시직 참주라는 불안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위해 페르시아를 끌어들여 낙소스를 침공하고,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킨 아리스타고라스는 결국 하찮은 전투에서 허망한 욕망을 접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분란은 불과 몇년 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과 같은 위대한 승리가 그리스에게 돌아갔지만 고대 최강의 페르시아에 맛선 그리스가 처참하게 유린된 것 또한 사실인 만큼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정치가가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무려 2천5백년 전에 있었던 이같은 정치인은 21세기에는 발을 붙이지 못해야 할 것 같지만 인간은 세월이 흐르며 진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쁘게 오염되는 것 같다. 어찌보면 지금은 한 명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국가에 반역하는 집단이 휩쓸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